국제 면화값이 폭락하자 인도의 면화재배 농민들이 신장을 팔거나 자살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빚더미에 시달린 이들이 마을을 통째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2001년 세계 면화 값이 급락하면서 주산지 인도에서 일어난 비극적 현상이다. 인도 농민들이 절망에 휩싸여있을 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이어주려는 회사가 나타났다. '공정무역(Fair Trade)' 면화 생산회사인 애그로셀 인터스트리즈가 시세보다 비싸게 면화를 구매해주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자살하는 농민이 사라졌다.
■애그로셀 인터스트리즈처럼 공정무역을 하는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민과 근로자의 빈곤을 퇴치하기위해 출범했다. 공정무역의 모토는 아프리카 동남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 설탕 바나나 면화 코코아 등을 재배하는 영세농민과 노동자에게 최소가격을 보장하는 것이다. 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무역자유화 등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제3세계 빈곤을 해결할 대안으로 미국 유럽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정무역제품도 1994년 3종에서 지난해 3,000여종으로 늘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만든 물건을 제값 주고 사는 공정무역은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희망무역으로 불린다. 방글라데시 여성이 전통적 수작업으로 만든 옷을 공정무역을 통해 판매하면 최소 하루 두 끼 식사를 하고 자녀 학비도 마련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다국적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네슬레가 몇 년 전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파트너스 블렌트 커피'를 판매한 것이 대표적이다. 커피와 신발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 동안 제3세계 미성년까지 고용해 임금을 착취하고, 해당국가 독재자들의 배만 불려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의 공정무역은 걸음마 단계다. 아름다운가게, 두레생협,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의 NGO와 기업이 인도 네팔 페루 등의 공정무역 커피와 설탕, 수공예품 등을 수입,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경우 300개 이상 마을이 공정무역 인증을 받고, 교회 4,000곳, 대학 60곳에서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서울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 열린 제9회 '세계공정무역의 날' 한국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이 선보여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더욱 공정한 세상을 위한 작지만, 중요한 선택"이라는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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