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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첫 문 연 서울 수화전문교육원… 모든 수업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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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첫 문 연 서울 수화전문교육원… 모든 수업 무료

입력
2009.05.1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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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로 숫자를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것과 비슷해요. 검지만 펴면 1, 검지와 중지를 펴면 2, 여기에 약지와 소지를 하나씩 더 펴면 3과 4가 되겠죠? 하지만 5는 좀 달라요. 엄지만 펴야 해요."

1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충정로 수화전문교육원 내 필기대비반 강의실. 수강생 28명이 7월에 있을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필기시험을 위한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목요일을 제외한 주중 4회 2시간씩 수업을 듣는 이들 대부분은 직장인이나 학생이다. 시간에 쫓겨 저녁식사를 거르거나 김밥으로 때운 채 듣는 수업이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영어강사인 박현진(24ㆍ여)씨도 일산 학원에서 강의를 마친 뒤 교육원까지 오려면 지각 면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일도 힘든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이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얼른 수화를 익혀 큰 외삼촌과 이야기꽃을 피울 생각에 잡념을 훌훌 턴다.

올해 환갑인 박씨의 큰 외삼촌은 농아인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하지만 박씨가 중학교 마치고 필리핀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어린시절 추억에는 늘 따뜻하고 고마운 분으로 남아있다.

"저희 집과 외삼촌댁 모두 성수동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어 명절 때나 뵙는 친척들과 달리 왕래가 많았죠. 외삼촌은 첫째에다 엄마를 닮은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박씨는 필리핀에서 대학까지 마친 후 지난해 5월 귀국하자마자 일자리를 잡고, 수화책을 사서 친척오빠에게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 배우겠다고 7년씩 유학은 하면서도 수화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아 자신을 유달리 아꼈던 외삼촌에게 따뜻한 마음 한 번 보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익히는 속도나 흥미에 한계가 있었다. 마음 속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려던 순간, 수화전문교육원 개원 소식을 접하고 얼른 수강 신청을 했단다.

이제 걸음마를 막 뗀 박씨의 목표는 수화통역사 자격증 취득 후 심화과정을 거쳐 국제수화 및 영어수화 자격증까지 따는 것이다. 농아인들이 영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그는 "처음에는 외삼촌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만 배울 생각이었는데 배울수록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면서 "전문분야를 살려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급반 수강생 박미정(34ㆍ여)씨는 간호사다. 장애인전문 재활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농아인 환자를 접할 기회가 많아 자연스럽게 수화의 필요성을 느꼈단다.

"3년 전쯤 농아인 환자가 와서 간단한 두통약 처방을 받는데, 수화하는 사람이 없어 서로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나마 제가 대학 현장실습 때 조금 익힌 수화로 간신히 의사소통을 했지요. 그때 수화를 제대로 배우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제 배우는 거예요."

수화교육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 네 살 배기와 돌쟁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일을 도맡는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친 김에 의료분야 전문수화도 배워 병원을 찾은 농아인 환자들의 아픈 곳을 '콕콕' 짚어줄 계획이다.

4일 문을 연 수화전문교육원은 서울시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화통역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곳으로, 서울시농아인협회(www.sdeaf.or.kr)에서 위탁 운영한다. 그동안 장애인단체 등에서 농아인 가족과 봉사자들을 위해 기본적인 수화를 가르쳐주던 것과 비교할 때 그 체계부터 다르다.

물론 초보자를 위한 과정도 있다. 현재 회화반부터 필기대비반, 의학ㆍ교통ㆍ법률 등 전문분야 수화를 배울 수 있는 전문영역반까지 15개 반이 개설돼 233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수화교육원의 모든 수업은 무료로 진행된다. 서울시가 '장애인행복 프로젝트'의 하나로 교육비를 전액 지원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몸이 불편한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물론 협회 등을 통해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만큼 수화교육원 지원이 일자리 창출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수화통역사는 741명으로 이중 25.9%인 192명이 서울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서울시에 등록된 청각장애인만 3만7,110명,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6만명으로 추정되는 농아인구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박지연 수화전문교육원 교사는 "현재 서울시 수화통역사는 농아인 313명당 1명 꼴로, 핀란드 100명당 1명, 일본과 미국 150명당 1명 등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면서 "매년 100명의 수화통역사를 배출해 2014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85명당 1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02)393-3515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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