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미리미리 배우느라 바쁘다. 정규 과정에서 다시 배울 때 당연히 앞설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선행학습이 필수로 여겨지는 탓이다. 아이들이 미리 배웠을 것을 전제로 껑충껑충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도 있다니, 이래저래 미리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마음고생을 한다.
반복학습이 효율적인 교육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같은 내용을 다시 배우면 흥미를 뚝 잃는 아이들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신기함이나 호기심이 주된 학습 동기일 때다. 이런 경우엔 선행학습이 오히려 해를 끼치고 늦은 출발이 득이 된다. 그러니 참 세상일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토머스 에디슨이나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예처럼, 어린 시절 평균 이하의 지적 능력을 가진 듯하다 인류에 큰 기여를 하는 대(大)천재가 되는 일도 있다. 선행학습이나 끊임없는 반복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지적 호기심의 토양에 어느 순간 점화가 일어나는 경우이다. 이런 소양을 가진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강요하면, 호기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성취를 이루는 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사교육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세칭 명문대학의 입학생 중에 강남학군 출신 비율이 꽤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사교육의 효용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고, 학부모들은 강남입성을 위해 노력한다. 시골에서 명문대 수석이 나와 동네잔치를 하던 시절은 먼 옛날의 아득한 추억이 된 모양이다.
조금 다르게 보면, 사교육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내용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선행학습 또는 반복학습이 대부분인 사교육 열풍의 와중에 우리의 아인슈타인이 질식해 버린다. 학습속도나 성취가 남다른 아이에게는 정규과정의 지루함 대신 사교육을 통한 지적 자극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입시에 초점을 맞춘 지금의 사교육에선 드물기 짝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가계에 부담을 주는 사회문제가 된 터라 이를 옹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률적 규제도 문제이니 경우를 구분해서 대처하고 내용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정규과정을 못 따라가는 경우라면 보강학습의 형태, 정규과정을 앞서가는 경우라면 재능을 지원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수학 과학의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면 국제 올림피아드 준비를 장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외국의 아이들과 경쟁하는 게 신나고 그게 학습동기가 된다면, 아이에게나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나 좋다. 세부적인 내용이야 여러 검토와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사교육 근절이 지상의 가치가 되어서 미래의 아인슈타인과 김연아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면 안 되는 것이다.
늦은 출발을 해서 앞서게 되는 일도 가끔은 일어나야 세상은 살 만하다. 1981년에 한국 수학자가 국제저널에 발표한 논문은 불과 7편이었다. 4년마다 전 세계 수학자 수천 명이 모여 당대의 성취를 정리하고 미래 연구방향을 설정하는 국제수학자대회(ICM)에는 1983년에도 한국수학자는 1명만, 그것도 국제 수학연맹의 여비 지원을 받아 겨우 참석했다.
적어도 수학분야에서 한국은 개도국이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에 점화가 일어나서 2007년 한국은 수학논문 숫자 기준으로 세계 12위의 수학 강국이 되었다. 117년째의 국제수학자대회가 2014년에는 서울에서 열리고, 서울 필즈상 수상자도 출현하게 된다. 늦게 출발해서 앞서게 되는 일은 아직 일어난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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