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지음/문학동네 발행ㆍ328쪽ㆍ1만원
"이 세상 누구나 경기장에서 태어나 트랙에서 살고 있단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어달리기 주자야.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그게 삶이고 운명이란다."(73쪽)
현실세계 밑바닥에 감춰진 삶의 기만성, 폭력성의 문제에 천착해온 소설가 박성원(40)씨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들에 노예가 돼버린 인간운명의 비극성'의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후 그가 4년 만에 선보인 소설집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은 스스로 만들어 놓았으나 그것에 노예가 된 인간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으로 점철돼 있다. 도시는> 우리는>
인간을 속박하는 것들의 키워드는 '시간' 그리고 '도시'다. 그것은 근대의 기호다. 작가는 '지금, 여기'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인간형을 형상화하는 데 공을 들인다. 탈주를 꿈꾸는 이들은 공상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위악적 행동을 일삼는다.
두 편의 연작소설로 쓴 '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는 노마드적 삶의 양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에서부터 탈주의 욕망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작품. 그 욕망이란 얼마나 끈질긴가? 그것은 대(代)를 잇는다. 전편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고리다. 그는 몽골에서의 유목민 생활을 꿈꾸며 술을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아들에게 "시간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편안한 노예가 된다는 것이야"라는 말을 되뇌는 인물. 후편의 화자는 2109년의 SF작가 지망생이다.
그가 SF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시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행복은 행복하다고 믿는 행복뿐이란다"라는 아버지의 말 때문이다. 현실의 지긋지긋함에 넌더리를 내며 미래를 꿈꾸고 사는 그의 앞에 또다른 인물이 나타난다.
100년 간 냉동돼 있다가 막 깨어난 한 매춘여성. 과거로부터 미래로 탈주해 온 인물인 그녀가 작가 지망생에게 던지는 충고는 '탈주 불가'의 비극적 운명을 함축하는 메시지. "백년 전에 어떤 산에 있든, 백년 후 어느 바닷가에 있든 똑같은 삶이란 걸, 그걸 알아야지. 백년이 지났다는 것은 단지 지구 최후에 백년 더 가까워졌다는 것 뿐이야." 작가가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방식도 교묘하다. 이 문제적 여성의 아버지는 소설 전편에 나오는 아버지, SF작가의 할아버지다. 즉 여성은 SF작가의 고모인 셈이다. 작가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통해 이 문제적 삼대(三代)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이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자본주의시대 예술가의 자기정체성 탐색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는 다른 단편 '분열'과 '몰서', 도시문명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을 고찰한 '논리에 대하여' 등도 이 소설집의 육체를 살찌우는 작품들.
"도시와 시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국가, 법, 이념 등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의 총집합을 의미한다"는 박씨는 "그것이 인간을 구속하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반복'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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