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동설-이원
곧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아침이 올 거야
그 무엇에도 닿지 않아 소리가 없는
태양이 떠오를 거야
검은 고양이의 털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는
물의 왼쪽 옆구리로 빠져나왔다는
아니 별들과 모래의 고독에서 새어 나왔다는 아침은
고요하고 고요를 겹겹으로 껴입은 공기는 투명해질 거야
태양은 둥글고 빛은 비리고 나는
피 맛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당신의 동쪽에서 당신의 서쪽으로 걸어갈 거야
나는 당신에게서 흘러나온 뜨거운 그림자일지도
3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그리움으로
내내 타고 있는 당신일지도
당신 안에서 한 발도 못 빠져나온 당신의
흑점일지도 모르는 것
그렇다면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그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당신에서 당신으로?
그렇다면 오늘도 나타나는 천 개의 태양은?
쉴 새 없이 땅속을 파고드는 발소리들은?
당신의 어디와도 닿지 않는
46억 년 전부터 계속된 나의 춤은?
● 어쩌면, 나는 당신에서 당신으로 움직인다. 당신의 그 어디에도 닿지 못했으나 당신의 동쪽에서 당신의 서쪽으로 나는 걸었다. 46억 년 전부터. 당신을 몰랐을 때에도, 당신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에도. 어쩌면, 그것이 나의 지동설. 지구가 3만 광년 떨어진 태양 주위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하듯이. 태양은 그리움으로 내내 타고 있었나봐. 나는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온 뜨거운 그림자인데….
그러나 아름답잖아. 모든 아침이 첫 아침이고 모든 햇빛이 첫 햇빛이야. 당신에서 당신으로 가는 나의 모든 발걸음이 첫 발걸음이야. 때때로 너무 뜨거워 어디선가 녹아버리기도 했지만.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ㆍ이원 1968년생.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 현대시학작품상(2002), 현대시작품상(2005) 수상. 세상에서> 야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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