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척을 참수한 후 잘린 머리를 시체 위에 놓고 아무도 못 치우게 했어요."
16세 소녀 컬숨은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파키스탄 북서부 스와트 계곡의 참상을 전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부락에서 저지른 포악하고 야만적 행동 때문이다. 현재 피란민 수십만명과 함께 마르단 지역 난민캠프에 머무는 컬숨은 "탈레반이 강조하는 이슬람 율법이 너무 엄격해 보수적인 주민들조차 등을 돌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컬숨은 스와트 지역 중심도시 밍고라에서 파출부로 일했지만 탈레반이 여성의 활동을 엄격히 제한한 탓에 순식간에 직장을 잃었다. 온 몸을 감싸는 '부르카' 착용을 강요하고 여학교는 모두 불태웠다.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주민은 무자비하게 살해하거나 협박을 당했다. 보복이 두려워 온전히 성과 이름도 밝히지 않는 컬숨은 "행복한 시절은 다시 안 올 것 같아요"라며 울먹였다.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 소탕을 목표로 스와트 계곡을 공격하면서 피란민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스와트 계곡은 '파키스탄의 알프스'로 불릴 만큼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지였지만 2년 전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탈레반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주민들의 지지서약을 받았고, 매일 가가호호를 방문해 율법대로 기도할 것을 강요했다.
심지어 바지 길이까지 간섭했다. 남자들에게 턱수염을 기르라고 강요하면서 이발소를 폐쇄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의 힘은 전혀 미치지 못했다. 주민들은 "교통경찰조차 없을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끔찍한 장면도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밍고라에는 매일 참수된 시신들이 교차로에 버려졌다. 시신 옆에는 간첩활동과 범죄 때문에 희생됐다는 문구와 시신을 치우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있었다. 탈레반은 주민들을 이슬람 특별법정을 세워 마음대로 처벌했다. 난민캠프의 샤힌 비비(30)는 "아무것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다"며 눈물을 흘렸고, 경찰관 남편을 둔 리마(20)는 "탈레반이 경찰관을 참수하는 등 경찰서를 공격대상으로 삼고있다"고 말했다.
죽을 고비를 넘겨 난민캠프에 합류했다고 살 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 정부가 사전 경고도 없이 전면전에 나서는 바람에 피란민 대부분은 겨우 옷가지만 챙겨 탈출했다. 생필품을 받으려면 복잡한 등록절차를 거쳐야 하고, 구호품도 부족해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피란민들은 "캠프에 탈레반 친척이나 지지자가 있을까 봐 제대로 말도 못한다"고 전했다.
12일 파키스탄 정부의 공수부대 투입 등으로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피란민이 급증하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생활 여건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다. 탈레반 소탕전 개시 후 밀려든 피란민은 80만명에 달하고 지난해부터 발생한 피란민까지 합하면 130만명이 넘는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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