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29돌이 눈앞인데…2009년 5월, 살벌하게 둘로 갈라진 광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29돌이 눈앞인데…2009년 5월, 살벌하게 둘로 갈라진 광주

입력
2009.05.13 23:53
0 0

5ㆍ18 민주화운동 29주년을 맞는 광주가 갈갈이 찢겨 있다. 1980년 5월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둘러싸고 5월 단체들간 다툼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5ㆍ18 추모 열기마저 사그라지고 있다.

13일 오전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검은 천을 두른 별관 앞에 천막 하나가 떡 버티고 서있고 '피 묻은 전남도청, 피로써 지키련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천막을 지키던 5ㆍ18유족회와 부상자회 소속 회원들은 "도청 별관 사수"를 외치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사흘 전 밤, 별관 철거를 주장하는 5ㆍ18구속부상자회 소속 회원 200여명이 농성자들을 끌어내겠다고 몰려들어 양측이 충돌 직전까지 간 뒤 생긴 버릇이다.

칠순의 한 유족회원은 "별관 지키겠다고 삭발까지 했던 (구속부상자회) 놈들이 이제는 (별관을) 뜯자고 하니 욕이 안 나오겠냐"며 "시민들에게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 부끄럽지만 자식들이 목숨을 바친 현장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천막농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24일. 당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기획단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착공 직후 도청 별관 철거에 나섰다. 별관 터가 문화전당의 주 통로여서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것.

5월 단체들은 "5ㆍ18의 역사성, 상징성이 훼손된다"고 반발하며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도청 별관을 '접수'했다. 구속부상자회도 동참했다.

"설계변경 불가"를 주장하는 기획단과 "벽돌 한 장도 못 빼간다"며 버티는 공대위측의 줄다리기가 장기화 하면서, 결국 문화전당 건립공사는 6개월 만에 중단됐다. 지난 2월 한 국회의원의 중재로 '별관 철거 후 5ㆍ18 조형물을 건립한다'는 합의문이 나오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다. 합의문에 사인한 구속부상자회는 천막을 걷고 농성장을 떠났다.

하지만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중재안에 합의한 일이 없다"고 추진단과 구속부상자회를 싸잡아 비난하며 다시 천막을 쳤다. 별관 철거 논란이 5월 단체간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도 별관 철거 해법을 내놓기보다는 찬반 논란에 가세하면서 광주는 두쪽으로 갈라졌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금 광주 지역사회(단체)는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한다"면서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동안 '5월 문제'라면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던 시민들도 뿔이 났다. 충장로에서 만난 회사원 주모(41)씨는 "5ㆍ18이 5월 단체의 전유물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제 정말 지겹다"고 했다.

80년 당시 시위대였다는 강모(73)씨는 "5월 광주의 대동(大同)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영령들 보기 부끄럽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옛 도청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조영수(67) 위원장은 "별관 철거 반대 농성으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돼 상권 위축은 물론 도심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해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라며 "조만간 농성 중인 5월 단체의 농성 해제와 조속한 공사 재개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옛 전남도청 앞에서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전당의 2012년 5월 완공 목표에만 매달려 철거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경직된 태도도 비난을 사고 있다. 4층 건물 중 아래 두 층만 헐어 통로를 내는 방식으로 별관 보존이 가능하다는 건축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획단측은 지난달 법원에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 농성장을 비우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참여자치21 관계자는 "추진단의 문제해결 방식을 보면 양보라곤 찾아볼 수 없다"며 "공사지연 책임을 5월 단체에만 떠넘기고 이를 빌미로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축소할 명분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5ㆍ18 기념 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이날 오후 도청 별관을 둘러보던 김모(50ㆍ자영업)씨는 농성장 옆 펜스에 붉은색 페인트로 쓰여진 '금남로에 피ㆍ피ㆍ피'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이내 자리를 떴다.

"너무 살벌하네요. '5월 광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도청 앞에서 열리는 5ㆍ18 전야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올해는 안 올랍니다."

광주=글·사진 안경호 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