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신문 부수 공사)에 참여하는 인쇄매체에만 정부광고를 주도록 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ABC 공사제도 개선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종합일간지들의 지지부진한 ABC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개선안은 신문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정부광고에 관한 것이어서 그동안 형식적으로 운영돼온 ABC 제도를 본궤도에 올릴 수 있는 정책이란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발행 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친정부 성향의 신문사들이 우선 ABC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 결국 이들에게 이득을 주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유가 부수 산정 기준 현실화"
문화부가 지난주 발표한 'ABC 공사제도 개선안'에 따르면 발행 부수, 유가 발행 부수 등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과 잡지에만 정부광고를 배정토록 했다.
문화부는 이를 위해 'ABC에 참여하는 매체에 정부광고를 우선 배정할 수 있다'는 현행 정부광고 업무 시행지침을 '발행 부수 검증에 참여한 매체에 정부광고를 배정한다'는 내용으로 바꾼다. 이 규정이 예정대로 내년 초 시행되면 정부는 ABC 미참여 신문사에 정부광고를 주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신문사의 자진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정가 또는 80% 이상 수금'으로 책정된 현행 유가 부수 산정 기준을 '50% 이상 수금'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준 변화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사례에 맞춘 것이어서 신문 판매 중 가판 비중이 높은 이들 국가의 사정과는 달리 배달 부수 비중이 높은 한국의 현실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와 함께 ABC협회의 신뢰도와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협회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증위원회를 신설하고, 현재 4명인 협회 조사원을 14명으로 늘리며, 회계사 등을 조사원으로 확보해 조사의 전문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는 ABC협회가 과거 특정 신문의 발행 부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 "여론 다양성 위축, 불법 경품 등 재연 우려"
개선안이 발표되자 몇몇 일간지들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부수의 다소를 광고와 연계하면 여론의 다양성이 위축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신문업계에선 ABC협회의 공신력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이 같은 방안을 내놓은 것은 문제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히 당장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불법 경품 제공이 극성을 부리는 등 신문 시장의 혼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검증 기준을 낮추면 신문사 지국에서는 구독료의 절반만 받고도 ABC협회 검증에서 유가 부수로 카운트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일간지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부당한 부수 경쟁을 벌일 것"이라며 "1년에 한 차례 이뤄지는 협회의 부수 실사가 정확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문화부 조현래 미디어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ABC 참여 인쇄매체에 정부광고를 주겠다는 의미이지 발행 부수가 많은 언론사가 더 많은 광고를 가져가도록 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며 "비록 부수가 상대적으로 적어도 특정 지역의 특정 수용자 층에 더 다가갈 수 있는 매체라면 광고를 주도록 하자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책이 업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있는데 지난해 공청회를 비롯해 비공식적으로 언론사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종합일간지 대부분이 정부광고와 ABC의 연계에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불법 경품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ABC협회 신뢰도 확립, 제도 연착륙 필요
언론 전문가들은 부수 공개는 이뤄져야 하지만 성급한 시행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진단한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은 "신문사가 잠시 고통을 겪더라도 의미있는 일임엔 틀림이 없지만 정밀한 검토가 필요한 만큼 1, 2년 내 시작은 힘들고 업계가 두루 참석하는 논의의 장이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ABC협회의 신뢰도 확립이 관건이라는 의견도 많다. 고한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ABC협회가 투명성과 신뢰도의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부수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에서는 어려운 문제일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인센티브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속히 ABC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연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회 곳곳의 정보를 요구하는 언론사가 스스로 정보를 감추려 한다면 떳떳하지 못하다"며 "결국 ABC 참여는 신문이 살 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ㆍ신문 부수 공사)
신문, 잡지 등 매체가 자진해서 보고한 발행 부수 및 유가 부수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확인, 공개하는 제도. 인쇄매체에 대한 광고단가 책정의 기준이 된다. 한국ABC협회는 1989년 사단법인으로 설립됐으며 언론사, 광고주, 광고회사 등 280개 사가 가입해 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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