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이 탈출해 소동이 벌어졌다. 체중 64킬로그램의 이 오랑우탄은 전기 펜스에 나무조각을 던져 넣는 기지를 발휘했다. 관람객은 혼비백산, 마취총을 든 수의사까지 달려왔지만 정작 오랑우탄은 태평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느라 바쁜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우리로 되돌아갔다. 아침밥을 먹으며 이 해프닝을 보던 큰애와 나는 동시에 탄성을 지르며 눈을 맞췄다.
오랜만에 우리 둘의 마음이 맞은 것이다. "저러다 원숭이들이 지구를 지배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큰애의 걱정이 늘어졌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탈출'이라는 영화가 떠올라 들려주었다. 승무원들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던 도중에 한 혹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원시인 수준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유인원들이다. 지배자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몇몇 유인원들이 반란을 꿈꾼다.
마침내 이 혹성의 정체가 밝혀진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길을 떠나 도착한 바닷가.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는 자유의 여신상이 바닷물 위로 솟아 있다. 아무래도 인간은 자신들이 만물의 영장인 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또한 지구에 불시착한 존재라는 것을 늘 잊고 산다. 아이와의 짧은 교감은 아이가 '원숭이'라고 말할 때마다 내가 '오랑우탄'이라고 정정해주는 바람에 끝이 났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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