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9재보선 완패 이후 한나라당 내에선 이른바 '쇄신' 논의가 한창이다. 선거 결과에서 확인되듯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민심의 이완 기미가 뚜렷하고, 오랫동안 품어 온 친이 친박 간 불화도 더 이상 방치했다간 불치병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처방하고 치료할 것인가. 당사자이기도 한 친이명박계, 친박근혜 인사들부터 나름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 봤다.
●친이계가 본 문제점과 쇄신책
한나라당 내 친이계 주류라고 해서 당 쇄신책에 대한 속내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미 계파 내 분화가 이뤄진 데다 개인별 특성에 따라 생각이 다른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양한 얘기를 끌어내 보면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있다.
우선 친이계라고 해서 청와대와 정부의 국정운영에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선 주로 두 가지가 지적된다. 하나는 정책적 당ㆍ정ㆍ청 소통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청와대와 정부 주요 인사들의 정무 감각 부재다. 정책 소통 문제는 법안 처리 과정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만큼 당 주류들은 시스템 개선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또 한 친이 핵심 의원은 "정무적 판단을 전혀 하지 않는 청와대 정부 일부 인사들 때문에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는 한발 더 나가면 청와대와 정부의 개편론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친이계의 보다 심각한 문제 의식은 당내로 향한다. 그 중에서도 역시 핵심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문제다. 사실 친이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화해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최근 '김무성 원내대표' 거부 등을 두고 "뒤에서 관망하다 당이 부도나면 땡처리로 접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의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친이계 의원들은 친박계와의 화합 또는 포용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 친이 의원은 "친박 측이 당과 국정운영에 방관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참여토록 하는 게 쇄신의 중요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문제는 방법이다. 다른 친이 의원은 "서로의 요구를 테이블에 완전히 올려놓고 터놓고 논의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당과 국정운영의 참여 기회를 대폭 확장하자는 말도 있다. 일정부분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 간에는 역시 신뢰가 문제다. 이에 대해선 "진심을 알아 줄 때까지 계속 노력하다 보면 100%는 아니라도 결국은 될 것" "어쨌든 한 지붕 사람들 아니냐"는 등의 기대가 있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도 거론된다. 관리형 지도부가 아닌 실세형 지도부로 바꿔 당을 힘 있게 운영하자는 얘기다. 이것이 계파 갈등 등을 줄일 것이라는 논리다. 이는 친이계 내 조기전당대회론자들의 시각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그림자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한 친이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의 실세화는 많은 문제점 개선의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친박계가 본 문제점과 쇄신책
친박계는 당과 국정을 쇄신할 수 있는 키를 그 누구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이 대통령에게 귀결되고, 이를 고칠 수 있는 이도 이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A 의원은 "모든 문제는 청와대에서 파생한다. 청와대가 이제라도 국정과 당 운영에서 자세를 고쳐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가 가장 큰 문제로 여기는 것은 당과 국정 운영의 '원칙 없음'이다. A 의원은 "당헌ㆍ당규에 따라 당 운영을 해 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사사로운 입김이 작용하고 청와대가 모든 것을 틀어쥐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의원은 "대표 시절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우선시한 박 전 대표로선 최근 당이 돌아가는 모습이 가당치 않을 것"이라며 "원칙이 신뢰를 만든다는 박 전 대표의 말은 곧 이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 신뢰받지 못한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친박 의원들은 당 화합이 안 되는 근본 이유를 이 대통령의 진정성 부족에서 찾는다. 친박 인사 D씨의 얘기. "대선 당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국정의 동반자'라고 했지만 대선 이후엔 '그게 뭔데'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 줬다. 총리설 등 진정성 없이 언론플레이만 하려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친박 의원들은 "현 정국을 풀 수 있는 대안은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만나 흉금을 터놓고 얘기해야 찾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빨리 두 사람이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친박 인사 E씨는 "진정성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다. 하지만 청와대가 사소한 것에서부터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예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개각 등 큰 사안은 하루 전이라도 미리 알려 주는 것이다. 사소한 게 쌓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F 의원은 공정한 공천 시스템을 위한 양측의 공개선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공천이었다. 앞으로도 공천이 화약고다. 사무총장을 중립적 인사로 앉히고 이후 공천은 철저히 시스템을 따를 것임을 공개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참에 당ㆍ정ㆍ청의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친박 인사는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눈과 귀를 가려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쇄신을 위해서는 인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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