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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빨대 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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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빨대 색출

입력
2009.05.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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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NYT)가 통킹만 사건은 미국 정부의 조작이라고 폭로했다. 1964년 8월 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미 구축함을 공격한 것을 빌미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한 계기가 이 사건이었다. 그런데 NYT가 7,000쪽에 이르는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단독 입수, 조작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NYT가 연일 특종을 터뜨리는 동안 워싱턴포스트(WP)는 NYT 기사를 인용 보도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듬해 WP는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응수했다. 두 보도는 베트남전 조기 종식과 미 역사상 최초로 재임 중인 대통령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두 보도는 정부 내부 제보자로부터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방부 비밀보고서는 당시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국방부 자문위원 대니얼 엘스버그가 NYT기자에게 건넨 것이고, WP가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밝힌 제보자는 당시 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 엘스버그는 간첩죄 등 12가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반전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시 정권 시절 그는 "정부가 그릇된 정책을 펴면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공무원의 임무"라며 국방부 공무원들에게 명분 없는 이라크전에 대한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국내 언론이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의 내부 제보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특종 보도를 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에는 그대로 기사를 써도 될 만큼 완전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기자가 발로 뛰어서 추적ㆍ확인 취재를 해야 하는 불완전한 것들이 많다. 정보 제공의 동기와 배경, 목적이 의심스러워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보가 유출되면 내부자를 색출하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엘스버그처럼 신념에 따라 법적 처벌까지 각오하고 내부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까지 막을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억대 명품 시계 수수사실이 보도된 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내부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빨대'는 내부 제보자,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다. 그러자 한 시민이 중수부에 빨대 한 상자를 선물했다. 수사팀에 대한 격려로 보이기도 하지만, 검찰과 언론의 의도적인 노 전 대통령 흠집내기에 대한 조롱으로 비치기도 한다. 빨대 색출에 앞서 검찰은 수사가 정도를 걷고 있는지 돌아보는 게 좋겠다. 민감하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정정당당한 수사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빨대 구멍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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