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갔다가 뜻하지 않은 장관을 만나 홀린 듯 바라보았다. 땡, 열두 시가 되자 빌딩 밖으로 와르르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로에서 수를 불린 그들은 마치 스크럼을 짜듯 인도를 점령했다가 사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나뉘어 총총 사라졌다. 그들을 왜 '넥타이 부대'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열하는 군인을 보는 듯했다. 오랜만에 지하철의 막차에 올라탔다. 그런 전용칸이라도 생긴 듯 마침 내가 탄 칸에는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졸고 있었다.
목을 죄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두고 와이셔츠 단추도 세 개나 풀렀다. 회식 자리에서 용케 일어나 막차를 탄 듯한데 저 지경으로 어떻게 막차 시간을 기억해 맞추고 전철을 탈 수 있었는지 요상하기만 하다. 태엽 인형처럼 규칙적으로 목을 끄덕이며 조는 사람, 졸다 옆으로 넘어진 사람, 그걸 보고 웃는 사람, 졸다 별안간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 마신 주종과 안주 냄새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다 들킨 채 그들이 지하철의 막차를 탄 것은 단 하나 택시비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다행인 것은 아무리 취해도 남자들에게는 집을 찾아가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가끔 열에 한 명 정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종점이 가까워지자 이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옆 자리의 주무시고 계신 분들을 깨워주십시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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