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 측근에게 짧고 분명한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YS가 DJ에게 손을 내밀어 정국 운영의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은 없느냐"고.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 DJ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년 동안 지내다 1994년 귀국,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을 설립해 정치활동 재개를 모색하던 시점이었을 게다.
YS가 대통령이 된 이후 영ㆍ호남으로 갈린 지역구도는 오히려 강화되는 기류가 짙었고, 문민정부 또한 성수대표 붕괴와 쌀시장 개방 등 잇단 사건ㆍ사고와 실정으로 국정의 동력과 주도권을 잃어버렸을 때다.
YS-DJ 불신·불화 축소판 방불
질문의 취지는 20년 이상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확고한 지역맹주 지위를 지켜온 두 어른이 힘을 합치면 어떤 국가적 과제나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축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과 배경이 무색하게도 돌아온 대답은 "단 1%라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뒤따랐다.
이후 DJ가 1995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참여해 민주당의 압승을 끌어내고 같은 해 7월 정계 복귀 선언과 함께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 15대 대선에서 당선된 것은 알려진 대로다.
상도동 사람들에 의하면 YS는 DJ의 정계 은퇴-정계 복귀-대선 출마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치밀한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DJ 집권 이후 아들 현철씨 문제로 인한 감정까지 더해져 지금도 DJ 얘기만 나오면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독설을 마구 퍼붓는다. 이에 대해 DJ의 '복심'으로 불리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최근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거짓말은 YS가 더 잘 한다. DJ는 하루에 1도씩 바뀌지만 YS는 180도 뒤집는다"고 말한 것이 흥미롭다.
옛날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지금 한나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이ㆍ친박 세력간의 갈등양상이 오랜 야당생활을 함께 했던 YS와 DJ의 불화보다 덜하지 않아서다. 그 바탕에는 대선후보를 겨뤘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간의 불신이 깊게 똬리 틀고 있다. 재보선 참패로 다시 불거진 두 사람의 앙금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이고 결국 '이혼'할 것이라는 관측도 심심찮게 나온다. 2년 전 경선 프레임을 지배했던 불신 구조가 그대로 재현된 까닭이다.
양측 진영에서 토해내는 잡소리를 제거하면, 박 의원의 표현처럼 '여의도 최고실력자'인 박 전 대표의 생각과 위상을 청와대가 권력공학의 틀에 쑤셔넣어 가볍게 취급해온 행태가 문제의 근원이다. 이 대통령이 "당에서 계파 소리 안 나올 때가 됐다"고 말한 것에 대해 "주류 비주류가 있다고 갈등도 함께 있으란 법 있느냐"고 답한 것이 핵심이다.
인사에서 정책에 걸쳐 당을 당헌ㆍ당규대로 투명하고 원칙 있게 운영하면 갈등도 힘을 못쓰게 마련인데, 청와대가 큰 길 대신 굳이 골목길을 찾아 다니면서 누가 발목을 잡네, 뒤통수를 치네 하며 엉뚱한 소리만 해댄다는 불신이다.
집권세력 내부의 다툼에 국정이나 잘하라는 말 외의 다른 훈수를 두는 것은 개운찮다. 그러나 한때 민주화의 동지였던 YS와 DJ의 불화로 인해 정치사에 굴곡이 지고 뒤끝이 깨끗하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리면 여권 내 두 세력의 날선 갈등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명백한 현실적 힘을 애써 배제하거나 무시하려는 전략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YS와 DJ의 악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청와대가 진정 정치적 리더십을 강화하고 정책 동력을 얻으려면 감투 한두 개의 거래로 여의도 정치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짧은 소견부터 버려야 한다.
청와대, 권력공학 유혹 떨쳐야
청와대는 박 전 대표가 촛불정국 등 주요 정치적 고비 때 침묵함으로써 '국정의 동반자' 약속은 이미 금이 갔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원칙이 만드는 최고의 가치는 신뢰"라는 알쏭달쏭한 말의 함의가 더 큰 듯 하다. 박 전 대표의 행보가 지방선거 등 내년 정치일정을 고려한 낮은 수준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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