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전제부터 해 놓자. 일반관객, 기자, 영화평론가 그 어느 입장에서 생각해도 <박쥐> 는 좋은 영화가 아니다. 대중적 재미나 판타지도 없고, 사회적 의미도 별로 찾을 수 없고, 예술적 완성도나 독창성도 그렇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박쥐>
재미없다고, 사회적 존재감이 없다고,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무조건 나쁜 영화는 아니다. 어차피 영화란 문화예술적 취향,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코드로 해석되고 소비되며, 만족도 역시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박찬욱이 만들었다, 송강호가 나와 성기까지 노출하는 파격연기를 선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보고 싶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영화다.
영화제 수상이 '최고'는 아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박찬욱의 <박쥐> '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의 영화는 대중의 정서와 가치관에 영향력을 미치고, 예술적 평가기준을 혼동시킬 만큼의 '문화권력'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감독이 그렇듯 그 역시 <올드 보이> 와 <친절한 금자씨> 로 칸과 베니스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어느새 '거장'이 되어 버렸다. 친절한> 올드> 박쥐>
아직도 한국영화에 칸과 베니스 베를린은 '꿈'이자 '끝'이다. 세계 3대 영화제이고, 그곳에서의 수상이 감독과 영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 그럴 만하다. 한국영화가 출품되면 올림픽 경기중계라도 하듯 언론이 자아도취에 빠져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객들이 영화제의 정치적 배경이나 심사위원들의 '독특한' 성향을 무시한 채 수상 감독에게 절대 평가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 맹목과 획일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이제 자신이 만드는 영화는 '관객들이 무조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오만과 착각에 빠져 있다. 거장에게도 걸작과 졸작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비참한 국내 흥행이 던지는 메시지까지 왜곡한다.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박찬욱은 'B급 영화' 감독이다. 600만명 이상 동원한 <공동경비구역 jsa> 가 있지 않느냐고? 엄밀히 말해 그 영화는 박찬욱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제작사의 기획영화에 가깝다. 공동경비구역>
뛰어난 감독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독특한 영화 문법과 색깔, 실험성을 갖춘 감독이다. 문제는 그것들을 좀더 대중적인 기호로 변주하지 못한 채, 퇴행적 자기 복제만을 반복한다는 데 있다. 누군가 박찬욱의 영화에는 늘 검은 색과 회색, 붉은 색 세 가지밖에 없다고 했다. 의상으로 상징되는 검은 색은 느닷없이 관객을 배반하는 블랙 유머, 회색은 주인공의 음울한 정서, 피로 나타나는 붉은 색은 살인과 폭력의 잔혹함이라고 했다. 그것을 가지고 장난치듯 영화를 만들고 세상을 조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의 구원과 속죄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를 가진 <박쥐> 에서조차 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진지한 접근이 싫었던지 자신이 없었던지 오히려 그것으로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과 그의 욕망의 대상이 된 여자 태주(김옥빈)에게 집중된 주제의식까지 흩어버렸다. <박쥐> 를 보고 관객들이 불쾌해 하고, 화를 내는 이유도 역기에 있다. 초현실적인 이야기일수록 구성은 촘촘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영화의 기본요건조차 무시한 아쉬움은 그 다음 문제다. 박쥐> 박쥐>
착각과 강박 벗어야 할 영화판
어쩌면 관객들은 박찬욱이라는 감독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실체를 잊고 있었거나, 너무 크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장'인 그의 영화라면 무조건 높이 평가해야만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수상 감독이나 관객이나 그런 착각과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는 이름만으로 만들고 평가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제62회 칸영화제가 오늘(13일) 개막한다. <박쥐> 가 본선경쟁에 올라 현지까지 달려간 한국언론들은 화려함을 위해 이번에 칸이 역대 수상감독들만 골라 초청한 배경까지 무시하며 흥분할 것이다. <박쥐> 가 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왕이면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박찬욱 감독과 한국영화에는 '독'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박쥐> 박쥐>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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