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친구가 요즘에는 기침을 마음껏 하는 것도 편치 않다고 투덜댔다. 기침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농담처럼 신종 플루가 아니냐고 묻는다는 거였다. 입을 손이나 손수건으로 가리고 기침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행여 침이 튀는 건 아닌지 불쾌한 기색으로 물러선다고 했다.
신종 인플루엔자A(신종 플루)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진앙지로 꼽히는 멕시코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이 질병의 공포 때문에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수도 멕시코시티가 적막한 도시로 변했다고 한다. 한 멕시코 연인이 각자 마스크를 쓴 채 키스를 하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이 질병에 대한 염려와 전염 공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다.
최근에는 중국의 영화배우 장만위(张曼玉)가 발열 증세를 보여 신종 플루 감염을 의심받았다는 뉴스 보도를 읽었다. 그 보도는 새로운 질병의 전염에 대한 공포가 이제는 소문과 풍문의 영역에 들어섰음을 알려 주었다.
암이나 불의의 사고와 같은 개인적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시선을 끌기는 하지만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염병은 다르다. 언제라도 감염될 수 있는데다 그 정체를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더 두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쉽게 풍문이나 소문으로 넘어선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는 알제리의 인구 20만 도시 오랑을 덮친 전염병의 재앙을 묘사하고 있다. 오랑은 사망자 수가 매일 수백 명에 이르고 발병하는 즉시 격리 수용되는 도시로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다. 이 책을 보면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 아니라 언제 병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와 그 때문에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병이 닥친다는 것은 격리를 의미하며 그것은 또한 신체적인 죽음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페스트>
그저 뉴스 보도를 통해 소식을 간간히 접하는 게 전부인 나로서는 사실 신종 플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반적인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과 멕시코, 미국, 홍콩 같이 감염자가 발생한 도시 이름을 아는 게 전부이다. 그런데도 연일 감염자 수를 통계 내기 급급한 뉴스 보도를 보고 나면 평상시에 질병에 대한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했음에도 곧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정체 불명의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또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연일 계속되는 뉴스가 석연치 않고 수상쩍기만 하다.
물론 유사 증상을 허투루 보지 말아야 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며,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신종 전염병에 대처할 만한 백신 개발을 서둘러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노 카렌이 <전염병의 문화사> 라는 책에서 '감염은 5억 년쯤 전 좀더 복잡해진 유기체가 최초의 화석 흔적을 남겼을 때부터 이미 어디에나 있었다'는 고백을 해 놓은 것처럼, 생명만큼이나 오래 되고 질긴 것이며 새로운 재앙이 아니니 새삼스럽게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전염병의>
들리는 얘기로는 평상시 손을 잘 씻는 등 개인 위생에 철저하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염려해야 하는 것은 감염이 아니다. 감염을 두려워하는 사회와 두렵게 만드는 사회이다.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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