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박쥐'의 마케팅과 배급 비용을 뺀 순수 제작비는 66억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연출해낸 화려한 색감의 화면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돈줄이 마른 충무로 현실에선 만만치 않은 액수다.
반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될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14일 개봉)의 제작비는 1억5,000만~2억원가량이다. 세계 영화계에서 명성이 높은 홍 감독의 작품임에도 '박쥐' 제작비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늘과 땅에 비교해도 무방할 제작비 차이. 그러나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것일까. '박쥐'와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 격언이 두 영화에 적용될 만하다.
'박쥐'의 제작비 절반은 할리우드 굴지의 스튜디오 유니버설 픽처스가 댔다. 영화는 완성도 되기 전 영국과 프랑스 등 12개국에 수출됐다. 칸영화제 등서의 추가 계약을 고려하면 더 많은 외화벌이가 예상된다. '올드보이' 등으로 쌓아 올린 박 감독의 국제적 명성이 국내 투자자의 부담을 반 이상 덜어주며 투자 위험도를 분산시킨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국내 일급 배우들이 발벗고 나섰다. 고현정과 공형진, 김태우, 유준상, 엄지원, 정유미, 하정우 등이 개런티를 받기는커녕 자비를 들여 출연했다. 단지 홍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디지털 삼인삼색 2009: 어떤 방문' 속 홍 감독의 단편 '첩첩산중'에 출연한 이선균은 개런티 1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그나마 대우 받은 축에 속한다.
조금은 섣부른 예상이지만 총 개런티 십억원 대의 배우들이 무보수 봉사를 한 덕분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제작사인 전원사는 손해를 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풍부한 물량 지원을 받은 박 감독이 훨씬 더 행복하지 않냐'고. 누군가는 되받아칠 수 있다. '자본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홍 감독이 더 부럽다'고. 두 감독의 상반된, 그러나 일맥상통하는 행보가 흥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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