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올라서 걱정거리였던 환율이 이젠 너무 빨리 내려가서 고민이다. 겨우 회복기미를 보이는 실물경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기업들은 전전긍긍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국내 경기는 환율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경제 자체가 특별히 좋아지지 않았는데도 1분기 '어닝 시즌'을 통해 기업들이 좋은 성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 각종 실물ㆍ심리지표들이 상대적으로 좋아진 것은 거의 전적으로 '환율효과'덕이었다. 일각에선 "1분기 기업실적은 고환율이 안겨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다.
기업엔 어떤 영향?
이런 상황에서 최근의 환율급락은 기업들에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환율이 떨어져 '착시의 장막'을 걷어낼 경우, 초라한 현 주소가 그대로 노출될 수도 있는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연구위원은 "매출액과 이익을 원화로 계산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원화 절상은 당장 2분기 순익을 급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세계경기가 여전히 얼어붙은 상황에서 수출의 가장 큰 버팀목은 현실적으로 가격경쟁력일 수 밖에 없다. 안순권 연구위원은 "4월 엔화가치는 절하됐지만 우리나라 원화는 경쟁국 가운데 가장 높은 9.9%나 절상돼 가격경쟁력 자체가 훨씬 불리해진 상황"이라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원자재 가격이 너무 높아서 낮은 환율이 원가 절감에는 도움이 됐지만 원자재 가격이 크게 떨어진 요즘의 환율 급락은 원가를 낮추는 장점보다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증시엔 어떤 영향?
환율급락은 증시에도 호재가 되기 어렵다. 신영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현재 시장의 관심은 신용경색보다는 향후 경기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환율 추가 하락은 분명한 악재"라고 주장했다. 즉 환율이 내려가면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외국인이 느끼는 국내 증시의 가격매력이 줄어드는 데다 ▦IT 등 경기에 민감한 소비재 이익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증시에선 환율하락으로 IT와 자동차 등 시장 주도주의 상승탄력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00선이 분수령?
문제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디까지 떨어지느냐다. 기왕의 경험상 너무 빨리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대체로 1,200원선을 사수할 수만 있다면 큰 타격은 없을 것이란 평가다.
NH투자증권 김종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환율하락은 그 동안 과도한 상승의 해소와 글로벌 달러화 약세에 기인하고 있어 이 흐름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중ㆍ장기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단지 환율이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보다는 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속도로 내려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필요하다면 당국의 환율방어(시장개입)도 나쁠 것은 없다는 지적이다. 안순권 연구위원은 "환율이 1,100원대까지 내려가면 타격이 클 것"이라며 "외환당국은 기업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차원에서라도 달러 미세 매입을 통해 외환보유액도 쌓고 원화 절상속도도 늦추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 "실물 뒷받침 안돼 1000~1100원하락은 없을것"
11일 원ㆍ달러 환율이 또다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전 거래일보다 9.1원 내린 1,237.9원으로 작년 10월14일(1,208원) 이후 7개월여만에 가장 낮은 수준. 지난달까지 줄곧 1,300원 선을 웃돌았고, 불과 2개월여전 1,600원에 육박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환율하락은 거의 수직낙하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지만 최근 환율 하락세는 거의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간밤 역외시장에서 환율이 먼저 하락하면 장중 주식시장의 외국인 순매수가 하락을 부추기는 형식. 여기에는 경상수지 흑자 누적과 미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 등도 환율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경상 흑자와 외국인 매수세라는 양대 요인이 환율을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며 "간혹 반등을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 추세로 봐도 이제 환율은 하향안정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실적 개선 없이) 너무 오른 것 아니냐'는 주가처럼, 환율 역시 '(경제의 체력 개선 없이) 너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이전 지지선이었던 1,250원이 뚫려 하락속도는 느려지겠지만 어쨌든 1,200원까지는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물경제의 호전 증거가 없어 1,100원이나 1,000원대 하락은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지난해 환율 급등의 출발선이었던 1,150~1,200원 사이에서의 움직임이 당분간 환율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도 "최근 환율 하락은 실물경기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낙관적인 측면이 있다"며 1,200원을 단기 저점으로 예상했다. 그는 "최근 당국의 달러매수 개입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원화 절상에 시장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라며 "따라서 환율은 일시적으로 1,200원선 아래로 내려가더라도 2분기에 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해 연말까지도 1,200선은 저점으로 유지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