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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6> 달아 달아 밝은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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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6>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입력
2009.05.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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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달아 밝은 달아-황인숙

어디선가 옮겨 적은 메모 쪽지를 들여다본다

달은 세상의 우울한 간(肝)이다.

- 람프리아스(그리스 철학자)

그래서인가, 간 속에 달이 있네

중국인들은 대단해!

달은 세상의 우울한 간이고,

간은 달에 우울히 연루되고…

뭐야? 마주서 한없이 되비추는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그러고 보니 폐(肺)에도 달이 있고

장(腸)에도 달이 있네

쓸개(膽)에도 달이 있고…

몸뚱이 도처가 달이로구나!

간이, 부풀어, 오른다, 찌뿌둥,

달처럼, 우울하게,

달아, 사실은 너,

우울한 간 아니지?

이태백이 놀던 달아!

● 가까이 온 달의 인력이 머리끝으로 우리 몸의 피를 끌어올리면 우리는 미친다. 이 광기의 대표적 증상은 과음이다. 쇤베르크도 이백도 그랬다. “우리가 눈으로 마시는 술이 한밤중 달에서 급류를 타고 흘러내린다. 시인은 황홀경에 빠져 그것을 깊이 들이켠다….” 지로(Giraud)의 시를 대본으로 한 쇤베르크의 가곡집 ‘달에 홀린 피에로’의 한 구절이다. 꼭 이백을 묘사한 것 같군? 달빛의 급류를 저리 들이켰으니, 간, 폐, 장, 쓸개에 달이 가득 차리라. 아, 우주는 바깥에서 멀리 바라보는 그림이 아니구나. 우주 안에서 별들이 쏘아대는 빛에 우리는 익사 직전까지 취하고 또 인력에 끌려 넘어지며, 때론 늑대처럼 청승맞게 울어댄다. 삶이란, 별들이 제 나름의 개성으로 우리 몸을 통과하며 만들어 내는 놀라운 화학반응이구나!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ㆍ황인숙 1958년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리스본行 야간열차> 등. 동서문학상(1999), 김수영문학상(200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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