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의 또 다른 제목은 '그 바보'다. '그 바보'는 '그저 바라보다가'를 줄인 말이자, 주인공 구동백(황정민)의 캐릭터다. 구동백은 톱스타 한지수(김아중)를 곤경에서 구해주고도 아무 대가를 받지 않을 만큼 순수하다.
현실에는 없을 것처럼 착하고 순수하니 '바보'다. '바보'는 구동백만이 아니다. SBS 드라마 '시티홀'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는 자기 카드값은 못 갚아도 생활보호 대상자의 먹을 것은 챙기고, MBC 드라마 '신데렐라맨'의 오대산(권상우)은 은인의 딸 서유진(윤아)의 사채빚 1억원을 대신 갚아준다.
그들이 '바보'인 것은 그들의 무대가 '동화'속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과 톱스타의 사랑('그 바보'), 10급 공무원의 시장 도전기('시티홀'), 졸지에 재벌 2세가 된 소시민('신데렐라맨') 이야기는 현대판 동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선한 마음만으로 살아간다. '그 바보'에서 구동백의 주변인들은 그와 한지수의 계약연애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시티홀'은 독특한 운율의 대사와 신미래의 과장된 코미디로 이 드라마가 정치에 관한 풍자적인 동화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 시간대에 동시에 등장한 이 동화들은 '막장 드라마'의 반대에 있는 또 다른 판타지다. SBS '아내의 유혹'처럼 '그 바보'가 단 1회 만에 모든 설정을 설명하는 빠른 속도를 가진 건 우연이 아니다. 최근 흥행 중인 영화 '7급 공무원' 역시 캐릭터의 현실적인 갈등은 제거한 채,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이어간다.
'막장 드라마'가 현실의 가장 극악한 모습을 과장한 판타지라면, 이런 작품들은 현실이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반영하는 판타지다. 비현실적이니 비판하자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선함을 믿는 이 드라마들은 '막장 드라마'보다 유익하다.
주목해야 할 건 '막장'과 '동화'라는 극단을 선택하는 대중의 기호다. 이 과장되고 빠른 판타지들은 대중이 작품이 보여주는 비현실 속으로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과거 시청자들은 MBC '서울의 달'처럼 서민의 현실 속에 해학과 슬픔을 함께 녹이는 작품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막장'으로 가거나, 착한 서민이 인생 역전을 통해 행복해지는 '동화'에 빠져든다. 그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만큼 현실이 고달프다는 건 아닐까. 이 '바보'들을 보면서 즐겁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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