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고유 화법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한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1676~1759) 서거 250주년이다. 5월과 10월, 일년에 딱 두 번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17일부터 31일까지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화파' 전을 열고 겸재를 집중 조명한다.
조선시대 그림으로는 소장품이 국립박물관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간송미술관은 겸재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도 많았다. 1971년 이 미술관의 첫번째 정기전시회였던 겸재전을 시작으로 진경산수화전, 진경시대전, 대겸재전 등 6회의 겸재 관련 전시를 열었다.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은 겸재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으며,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장은 그것을 토대로 한 연구를 통해 숙종에서 정조에 이르는 125년을 조선시대의 문화부흥기인 '진경시대'라 규정하기도 했다.
겸재의 산수화는 암산절벽(巖山絶壁)은 남방화법인 필법(筆法)으로, 토산수림(土山樹林)은 북방화법인 묵법(墨法)으로 처리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토산이 암산을 감싸도록 하거나 서로 마주보도록 해 음양의 조화와 대비를 이루게 했다.
최완수 실장은 "겸재는 주역의 원리를 적용한 화면 구성으로 30대 시절부터 중국에서까지 이름이 높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신 행차가 있으면 역관들이 겸재의 그림을 받아가려고 문전성시를 이뤘고, 그림값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겸재에 대한 영조의 사랑은 대단했다. 최 실장은 "영조가 사가에 지내던 10대 시절, 인근에 살던 겸재에게 그림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연구 결과 겸재가 41세의 늦은 나이에 종6품인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兼敎授)로 특채됐음이 확인됐는데 여기에도 영조가 관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겸재가 관동팔경, 단양팔경 등을 사생할 수 있었던 것도 적절한 지역에 벼슬을 내려준 영조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겸재의 작품 80여점과 조영석, 심사정, 김홍도 등 겸재의 화풍을 계승한 이들의 작품 20여점이 나온다. 겸재 진경산수화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은 '청풍계(淸風溪)'. 겸재가 64세 때 한양의 청운동 일대 골짜기를 그린 이 작품은 그의 진경산수화가 본 궤도에 오른 기준작으로 평가받는다.
한강의 명승지를 그린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금강산을 그린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의 그림들도 전시된다. 겸재는 36세와 72세에 두 번 금강산의 풍경을 담는데, 이번 전시작은 노년의 것이다. 욕심을 버린 대가의 그림에는 세련미가 넘친다.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하는 총석정의 여러 그림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63세에 그린 '관동명승첩' 속 총석정에 비해 72세에 그린 '해악전신첩' 속 총석정은 과감하게 배경을 생략해 단순화한 형상이다.
80대의 그림들은 더욱 상징적이고 추상적이다. 닭과 고양이 등을 그린 '추일한묘(秋日閑猫)', '계관만추(鷄冠晩秋)' 등은 세밀화에도 능했던 겸재의 화풍을 보여준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도 9월부터 11월까지 '겸재 정선전'을 열 예정이며,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최근 건립된 겸재정선기념관에서도 상설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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