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용서하세요. 갑분 애기씨가 서방님이 절름발이라 죽어도 안 온다고 해서 제가 아가씨 대신 신부로 뽑혔어요. 전 가짜예요, 흑흑."
연극 <맹진사댁 경사> 의 한 대목을 읊는 배우 최은희씨의 호흡이 가빴다. "다시 이 무대에 올라오다니 꿈을 꾸는 것 같다"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더듬거리던 그의 대사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맹진사댁>
정식 무대 세트도, 연기 파트너가 있는 것도 아닌 짤막한 낭독이었을 뿐이지만 객석의 반응은 어느 공연보다 뜨거웠다. 때이른 무더위를 식혀준 단비가 내린 11일 오후, 서울 한복판 명동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30여년 전의 그 분위기로 되돌아가 있었다.
옛 명동국립극장을 복원한 명동예술극장이 6월 5일 개관을 앞두고 이날 연극인들을 초청, 극장을 첫 공개하는 잔치를 열었다. '명동의 추억, 명동의 예술'이라는 집들이 행사였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장민호, 백성희, 최은희, 강부자씨 등 연극계 인사와 시민 등 350여명이 함께 한 자리였다.
일제시대 '명치좌'에서 서울시의 '시공관'으로, 다시 '국립극장'과 '예술극장'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명동의 문화부흥을 이끌었던 극장 건물이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된 1975년 이후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34년 만에 연극인들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옛날 방식대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징을 울린 배우 서희승씨는 어린아이처럼 무대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개관 기념작 <맹진사댁 경사> 에 출연하는 원로배우 장민호씨의 독백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오 내 사랑 명동극장, 네가 어느 결에 네 모습을 되찾다니 이 할애비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 맹진사댁>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를 써 온 명동국립극장의 전통을 이어 한국연극의 미래를 착실히 열겠다"고 환영인사를 한 구자흥 극장장과 "명동예술극장이 연극의 새로운 미래를 쓰게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유 장관의 표정도 여느 연극인들처럼 상기돼 있었다.
정동환, 윤석화, 강부자, 최은희씨 등이 추억담과 함께 대사를 낭독한 '나를 취하게 한 명대사' 코너에서 연극인들의 기대와 설렘은 절정에 달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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