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실명 비판이 잇따라 이어지면서 이번 파문이 사법파동의 재연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11일 법원 내부게시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오전 정영진 부장판사의 글을 필두로 판사들의 공개적 의견 표명이 6건 이상 이어졌다. 판사들의 글마다 많게는 2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현직 판사들이 공감을 표시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문형배 부장판사와 이옥형ㆍ유지원ㆍ오경록ㆍ이헌영 판사 등 이날 '비판 릴레이'를 이어간 이들이 2월 신 대법관 파문이 처음 불거졌을 때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던 법관들이었다는 점도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당시에도 신 대법관의 처사를 비판하는 글이 산발적으로 게재됐지만 이날처럼 하루에 집중되지는 않았다.
비판의 강도를 봐도 좀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법관 사회의 분위기에 비춰 이례적이다. 이옥형 판사는 "대법관은 정의로워야 하고 사법부는 불의와 부당한 간섭에 비타협적이어야 한다"며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법관이 있다면 존경을 철회하겠다"며 신 대법관을 직접 겨냥했다. 유지원 판사는 "신 대법관님의 사과를 기대하는 것이 실례가 되거나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일선 판사들의 반발이 신 대법관 파문 직후보다 더 강하게 표출되는 이유는 대법원 공식 기구인 윤리위가 신 대법관의 공식적 책임을 완전히 배제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윤리위는 8일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신 대법관에 대해 주의ㆍ경고 조치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렇게 되면 신 대법관은 징계위에 회부되지 않고 그대로 대법관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윤리위가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신 대법관 파문 이후 사법부가 내부적 진통을 겪으면서도 위기를 봉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일선 법관들 사이에 "대법원이 이번 사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지켜보자"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며 판사들의 개인적 의견 표명이 잠잠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판사들의 기대와 달리 신 대법관이 징계도 받지 않은 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대법원에 버티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 추락이 불 보듯 뻔하다는 위기의식으로 작용해 판사들의 이례적 반발을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문제를 간과한다면 향후 개별 법관의 재판권 독립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이옥형 판사는 이날 올린 글에서 "많은 법관이 윤리위 의견이 있기까지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며 "그러나 너무 졸렬한 의견이 나오니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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