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3살 총각입니다. 우리 어머니 흉을 살짝 보려고 합니다. 어버이날 며칠 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얼른 며느리나 데려와서 손주나 안겨줘." "아직 환갑도 안되셨는데 벌써 할아버지 소리가 듣고싶으세요?" "네 나이가 몇이냐? 아버지는 네 나이에 학부형이었어, 이 놈아." 부모님은 일찍 결혼하셔서 아직 50대시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목록을 불러주셨습니다. "내건 운동화 추리닝 영양제 세가지 중에서 하나 사와라. 필요한 거 말하니까 선물하기 수월치? 고민 안 해도 되고, 고마운 줄 알아." "어머니는 돈보다 물건이 더 좋으세요?" "돈은 아까워서 통장에 다 들어가거든. 잔말 말고 셋 중에서 하나 꼭 사와." 어머니는 볼일은 끝났다는 식으로 바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역시 못 말리는 우리 어머니셔.'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니들 어버이날 카네이션 선물 할거지? 그럼 다른 데서 사지말고 엄마한테 사거라." "엄마도 꽃 팔아?" 어머니는 "아니. 니들한테만 팔 거야" 하시더니 장롱 속에서 카네이션을 꺼내셨습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아주 멀리까지 가서 사왔지. 학교 앞에는 이렇게 예쁜 꽃 없을걸?" "얼마주고 샀는데?" "천원." "그럼 우리한테 얼마 받을 거야?" "천원." "깎아주면 안돼?" "안돼. 이거 원래 더 비싼 거야." 다음해 어버이날에도 어머니는 "꽃 사라"고 하시더니 장롱에서 꽃을 꺼내셨습니다. "엄마, 이거 작년 것과 똑같은데?" "잠깐 달았던 건데 돈 쓰면 뭐하냐? 이번에는 300원 깎아줄게 700원만 내라." 그 다음해는 500원…,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그 꽃은 사라졌습니다.
"엄마, 이제는 그 꽃 없어요?" "이젠 중학생이니까 더 근사한 꽃으로 선물 해줄래?" 그동안 엄마는 저희에게 받은 돈을 우리들 저금통에 넣으셨고 꽃은 엄마가 손수 만드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올해도 ""어머니, 카네이션도 사갈까요?" 여쭈어 봤더니 우리 어머니 역시 "됐다. 나이 더 들면 달지. 그래도 선물까지 '됐다'고 하면 니들이 정말 엄마는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할까봐 챙겨 받는 거다."
어머니는 달력을 새로 받아오시면 제일 먼저 당신 생일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십니다. 그러고도 혹 우리가 모를까봐 "이날이 엄마생일이야. 알고있지?"하시며 며칠 전부터 다짐을 하십니다. 못 말리는 우리어머니 맞죠?
이번 어머니 선물은 종합비타민으로 샀습니다. 꼭 무슨 날이 아니어도 자주 찾아 봬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 4동 고영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