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가 되고 싶다."
9일 타계한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서문의 제목이다. 세상을 훨훨 나는 '나비'와 세상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를 아우르는 이 소망처럼, 그는 정말 하늘로 올라 나비가 됐고 봄비가 됐다. 소아마비와 암 투병 와중에서도 가르치고 실천했던 희망의 메시지대로 그가 떠난 자리에는 애틋한 추모의 물결 속에 희망의 씨앗이 피어 올랐다. 살아온>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지인과 제자, 독자들은 흐르는 눈물 속에서도 "선생님 때문에 삶에 힘을 얻었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그의 제자였던 황은주(38) 서강대 영문학과 조교수는 "아버지가 장애인인 것을 부끄러워 하던 내게 많은 것을 극복하도록 이끈 삶의 모델이었다"며 "교수님이 '사람들이 나더러 불구라고 하는데 세상에는 마음이 불구인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장 교수한테 박사과정을 지도받았던 김정진(39)씨는 "암이 재발한 후 수업 중에 넘어지시는 바람에 학생들이 너무 당황했는데, 도리어 '책상이 여기 왜 있니?'라며 농담을 할 정도로 주체 못할 명랑함의 소유자였다"며 "'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고 하신 말씀대로, 학생들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셨던 그분은 우리들의 희망이셨다"고 말했다.
향년 57세로 별세한 장 교수는 장애 역경을 헤쳐오면서 훈훈한 문향(文香)을 남긴 빼어난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다. 1952년 한국의 대표적 영문학자인 장왕록(1994년 작고) 서울대 교수의 1남5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1급 장애인이 됐다.
휠체어와 목발에 평생 의지하는 삶이었지만 서강대 영문과와 대학원을 거쳐 1985년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01년 유방암이 발병해 이를 이겨낸 듯했으나,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투병해왔다. 장명수 한국일보 고문은 당시 칼럼에서 그의 재발병 소식에 "하나님, 정말 너무 하시네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는 스물 네 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힘겨운 투병 와중에서도 2005년 강단으로 복귀해 제자들을 가르쳤고 <문학의 숲을 거닐다> (2005), <살아온 기적 살아갈> (10일 출간) 등을 집필하고 언론에도 칼럼을 꾸준히 연재했다. 살아온> 문학의>
장애와 암 투병 속에서 희망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강인한 의지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날 빈소를 찾은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2001년 투병이 시작될 때 장 교수에게 강의시간을 줄이라고 했지만, 장 교수가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정상적으로 수업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장 교수가 서강대에 부임했던 첫해(85년) 첫 수업을 들었던 이기란(44)씨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카리스마 넘치는 강의를 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한번도 교수님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도서관 앞 계단을 오르던 교수님이 넘어져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괜찮다'며 혼자 일어서시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희망과 의지의 상징으로서 그의 글은 환자, 재소자, 군인,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주말 이후 빈소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과 기사 댓글에는 추모 글들이 줄을 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맑은 정신은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겁니다"(phenom7), "선생님의 책이 방황하는 저의 조카를 새 인생으로 살게 해 주셨습니다"(damage18) 등 장 교수의 글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과 추억들이 넘실댔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한 독자는 10일 장 교수의 책을 펴낸 샘터출판사에 "병원을 갔다 오는 길에 울었습니다. 맑은 하늘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일일 것입니다"는 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회원수가 1,000명이 넘는 그의 팬클럽 인터넷 카페의 한 회원은 "선생님은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은 생전에 장 교수의 글에 대해 "시종 어떤 아름다운 영혼의 숨결과 향기가 느껴진다"며 "수많은 결핍을 치유하고 더 높은 창조의 활력으로 삼기에 충분한 사랑의 전도서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는 평을 남겼다.
유족은 모친 이길자, 오빠 장병우 전 LG오티스 대표와 언니 영자, 여동생 영주ㆍ영림ㆍ순복씨. 발인은 13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 (02)2227-7550.
◆장영희 교수가 남긴 글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2009, p. 141) 살아온>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중략)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문학의 숲을 거닐다> (2005, p. 316) 문학의>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게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관계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문학의 숲을 거닐다> (2005, p. 228) 문학의>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내 생애 단 한번> (2000, p. 89) 내>
"어쩌면 우리삶자체가 시험인지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용기의 시험이고, 인내와 사랑의 시험이다. 그리고 어떻게 시험을 보고 얼마만큼의 성적을 내는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내 생애 단 한번> (2000, p. 135) 내>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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