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내린 은행권의 '어닝(실적발표) 시즌'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린다. 작년 4분기 적자쇼크에서 벗어남으로써 '비교적 선방했다'는 종합평가를 받고 있지만, 속 사정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 싶다.
실제로 각 은행들은 흑자 적자 여부를 떠나, 1분기 실적에 대해 적잖이 불만족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은행권의 리딩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KB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의 1분기 실적에서 아쉬운 점들을 추려봤다.
KB금융: 안에서 멀쩡한 바가지, 밖에서 샜다.
KB금융지주는 1분기 2,383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해 지주사 중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대표적 이익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2%대를 유지해 1%후반으로 추락한 여타 지주들을 압도했을 정도로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악재는 나라밖에서 찾아왔다. 카자흐스탄 뱅크센터크레디트(BCC) 투자에서 전체 순익의 절반에 가까운 1,000억원의 손해를 본 것. 지난해 카자흐스탄에서 6번째 규모인 BCC를 인수하기 위해 5,0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는데 글로벌경기 추락 여파로 대규모 손실로 돌아왔다. KB관계자는 "향후 손실규모가 제한적인데다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이익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지만, 1분기 '옥의 티'임엔 틀림없었다.
우리금융 : 비상식량 팔아 춘궁기 보냈다.
우리금융의 1분기 순익 규모(1,623억원)는 당초 시장의 전망치 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지난 4분기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이 1분기에 1,675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지만, 이중 70% 이상이 현대건설 등 보유주식 매각차익이었고 정작 중요한 영업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 자산을 팔아 낸 이익이 더 크다는 점에서 시장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이다. 2분기에도 현대건설 블록세일과 서울 잠실전산센터 부지 매각으로 약 4,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여 흑자는 예약해 놓았지만, 시장은 흑자 규모보다 내용에 더 관심이 많다.
신한금융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지주사 중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신한금융은 언제나 어닝 시즌의 주인공이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1분기 당기순이익은 예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181억원에 그쳤다.
주원인은 신한은행의 실적 악화. 신한은행은 1분기 이자마진이 급격하게 줄고, 중소 조선사에 대한 대규모 충당금 때문에 737억원의 순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특히 순이자마진 하락율이 4대 은행 중 가장 높아 내용 면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순이익 규모가 동생 격인 신한카드(순이익 1,426억원)에 처음으로 추월 당하면서 체면까지 심하게 구겼다. 이 때문에 비은행 부문(카드, 증권, 보험 등)의 지주사 당기순이익 기여도가 지난해 47.8%에서 73.8%까지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하나금융 : 딱 한 놈에 모질게 걸렸다.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1분기 지주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다. 무려 3,25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어닝 쇼크'라는 평가까지 받은 것.
지난해 3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태산 LCD가 발목을 잡았다. 하나은행은 올 1분기에 환율이 급상승하며 태산LCD의 키코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0억원에 가까운 대손 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중소기업 하나가 1분기 전체 대손 충당금(5,631억원)의 30% 가량을 차지한 셈. 특히 태산 LCD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누적해 온 대손 충당금도 무려 6,700억원에 이를 정도다.
하나금융측은 "키코의 결제가 시작되는 이 달부터 환율이 하향 안정세를 타고 있어 실제 손실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면서 "무엇보다 악재를 다 노출했다는 점에서 시장평가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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