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경제위기 상황의 일자리 창출과 노사안정 방안' 세미나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순수 실업자만 1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구직 단념자 취업준비생 불완전 취업자 그냥 쉬는 유휴인력 등을 포함한 유사실업자는 350만명에 육박하는데도, 아직까지 큰 사회적 문제로 분출되지 않는 것이 활동가들의 수수께끼라는 것이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10%대를 넘보면 유럽의 예에서 보듯 시위나 소요가 벌어질 법 한데도 그런 조짐은 우려 수준에 머물러 있다.
▦ 신 총장이 나름대로 제시한 설명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군, 즉 병역의무가 실업군을 일정 부분 흡수하는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의 독특한 가족구조를 들었다.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자식은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누에고치(cocoon) 문화가 그것이다. 이에 더해 신 총장은 가부장적 문화가 만든 노동자들의 의식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나라경제가 어렵고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노동자들이 정부나 경영진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잘못이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 이런 제도와 문화, 의식을 우리 노동운동의 저변에 깔린 흐름으로 규정한 그는 그러나 최근 정부정책과 기업의 경영방침이 지나치게 '노동 배제적'으로 흘러 노사관계 안정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고통 분담에 동의했던 노동자들이 이후 느꼈던 배신감,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 그리고 얼마 전 고양 킨텍스 모터 쇼장에서 벌어진 선지 퍼포먼스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노동현장에서 진행되는 퇴행적 사례와 자본노동 분배율의 악화 등의 자료도 덧붙이며 언론과 사회의 진정한 관심을 요청했다.
▦ 이 같은 그의 호소가 큰 반향과 울림을 낳은 것 같지는 않다. 경총 관계자는 노사민정이 합의한 고용안정 방안이 고통전달 체계를 왜곡해 경쟁력을 해칠 가능성을 걱정했다. 세미나가 열린 그 날,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를 올해 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고용 관련 법과 관행의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얼마나 더 양산할 작정이냐"고 즉각 반발했다. 이런 식이면 노동시장의 수수께끼가 폭발적 파열음을 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모두가 역지사지하며 더 고민해야 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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