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를 둔 오신준(46)-송영미(37)씨 부부는 지난해 8월 입양으로 딸 현주(2007년12월생)를 얻었다. 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오씨 가족을 찾았을 때 현주는 엄마, 아빠와 이모 부부에 둘러싸여 까르르대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통통한 몸매, 앙증맞은 걸음마. 사춘기인 오빠 태양(15)군도 웃는 얼굴로 동생을 얼렀다. 이모 송영임(44)씨는 "우리 8남매가 가족 모임을 하면 현주가 단연 꽃이다. 입양을 반대했던 걸 후회할 정도"라고 말했다.
오씨 가족이 현주를 처음 만난 때는 지난해 2월. 그보다 석 달 앞서 송영미씨는 딸 진아(16)양이 급식 시설 없는 고등학교에 배정돼 도시락을 싸주기 위해 직장을 관뒀다.
가난을 면하려 꼬박 10년을 다닌 곳이었다. "살림이 어느 정도 폈으니 고생 그만하라"던 남편과 자녀들은 퇴직을 반겼지만, 송씨는 집안일만 하기 갑갑했다.
생각해낸 일거리가 집에서도 가능한 아기 돌보기. 복지시설에 맡겨진 아기를 입양 전까지 돌보는 위탁모 활동을 알게 된 송씨는 '봉사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며 무릎을 쳤다. 당장 강남구에 있는 대한사회복지회를 찾아갔다.
송씨는 현주와의 첫만남이 지금도 새롭다. 그녀는 "내가 찾아간 날 마침 병원에서 퇴원한, 까만 얼굴에 남루한 주황색 내복의 아기가 현주였다. 솔직히 너무 못생겨서 쟤는 아니었으면 싶었다"고 웃었다.
얼굴이 새빨갛도록 울던 아기는 송씨가 안자 신기하게 울음을 그쳤고, 귀갓길 내내 품 속에서 새근새근 잤다. 이게 인연이구나 싶었다. 첫날밤 이후 송씨에게 현주는 더이상 잠시 맡아 기르는 아이가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도 그랬다.
위탁 4개월 만에 부부는 입양을 결심했다. 하지만 큰 난관이 있었다. 겉으론 병색이 전혀 없지만 현주는 몸 속에 부신피질호르몬이 생기지 않는 난치병을 타고 났던 것. 송씨도 아기 건강에 이상이 있음은 알았지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의사는 "호르몬 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자라면서 조숙증, 성장 조기중단, 피부 이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우 내 집을 장만했을 뿐 넉넉지 못한 살림인데 아이를 평생 감당할 수 있을까, 송씨는 염려했다. 고민하느라 사흘을 앓아 누웠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씨는 "병도 다 자기 복(福)"이라며 아내에게 용기를 줬다. "이제야 살 만해졌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 드느냐"며 입양을 반대했던 친정 식구들도 힘을 보탰다.
작은 언니는 병문안 자리에서 "닥치면 해결하면 될 일을 왜 미리부터 겁을 먹느냐. 현주 챙기려면 빨리 자리 털고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래, 물질적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누구 못 지 않게 줄 자신 있다, 송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식구가 늘어나 살림이 빠듯해지긴 했다. 보장보험을 들 수 없는 현주의 앞날을 대비하려 입양 직후 목돈을 붓는 적금을 들었다. 분유값, 기저귀값도 만만치 않다. 반면 건설업을 하는 가장의 수입은 불경기로 많이 줄었다.
이럴 땐 가족이 힘이다. 가까이 모여 사는 송씨의 오빠, 언니들은 지극한 조카 사랑으로 막내 여동생의 짐을 덜어준다. 송씨는 "한창 멋부릴 나이인데도 비싼 옷 탐내지 않고, 막내와 잘 놀아주는 두 아이에게 특히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씨 부부는 "입양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특별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 아파' 낳았든, '가슴'으로 낳았든, 자식을 기르며 느끼는 곡진한 사랑은 매한가지"라는 것이 입양의날(5월11일)을 앞둔 부부의 소회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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