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산강 중류 지역인 전라남도 나주 영동리에서 5~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0여 구가 발견됐다. 1,500년 전 인골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발굴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게다가 이 고분군 안에는 백제의 영향력을 벗어난 여러 양식의 무덤이 나타났다. 여러 종류의 무덤이 아파트처럼 얽혀 있는 영동리 고분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KBS 1TV '역사추적-영산강 아파트형 고분의 미스터리'편이 추적해본다.
나주 영동리 고분에서는 돌로 방을 만들어 시신을 매장한 백제식 돌방무덤, 판석으로 관을 만든 돌널무덤, 옹관으로 된 무덤까지 4~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무덤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고분 발굴에서 주목할 점은 석실이 6, 7개씩 붙어있는 6세기 아파트형 고분에서 수습된 인골 23구의 DNA와 형질 분석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분석결과, 놀랍게도 인골은 신라, 가야, 조선인과 차이를 보이는 한편 현대 일본인과 가장 가까웠다. 이러한 사실은 옹관 고분 세력이 백제보다는 다른 지역과 더 많이 교류한 세력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영산강 일대의 영동리, 복암리 고분에서 주목받는 무덤 양식인 옹관도 무덤 주인이 백제와 별개의 정치연합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옹관은 크기가 큰 옹기 한 쌍을 관으로 이용해 시신을 매장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학자들은 옹관 고분을 사용한 세력이 백제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세력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고분에서 백제보다는 신라나 가야, 심지어 왜에 가까운 유물이 출토되는 점도 근거 중 하나다.
해남 군곡리 패총과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고려 시대 배편을 통해 과거 영산강이 해상 세력에 의한 자유무역지대였다는 사실도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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