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월머트, 로저 하이필드 지음ㆍ이한음 옮김/사이언스북스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교 출생, 2003년 2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사망. '그녀'는 단 7년의 생존기간 동안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여러 차례 장식했고 피플 지의 표지모델로도 등장했다. 영국 여왕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숱한 과학자, 철학자, 종교인의 골치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돌리다.
이 책은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월머트 에든버러대 교수와 과학저술가인 로저 하이필드가 들려주는 돌리에 얽힌 이야기다. 이들은 황우석 사태로 한국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던 줄기세포 논쟁의 진실을 정공법으로 파고든다. 배아 줄기세포를 생명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존재론적 문제, 퇴행성 질환의 치료에 줄기세포가 희망이 될 가능성 등을 차분히 설명한다.
월머트는 메시아를 만난 듯한 환호성과 사탄을 보는 듯한 극렬한 혐오 속에서 돌리를 탄생시키고, 키우고, 떠나보낸 속내를 잔잔하게 털어놓는다. 열악한 연구비로 인해 "고급호텔 생수 1통 값인" 양을 포유류 복제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삼은 사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프리마돈나"였던 돌리의 성격, 암살(?) 위협으로 벌판에 풀어놓지 못해 비만증에 걸린 돌리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기록돼 있다.
"나는 누구든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는 월머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세상의 걱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라엘리안 무브먼트(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종교운동)처럼 왜곡된 방향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비판한다. 그러나 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그의 궁극적인 전망은 밝다.
"나는 치료를 위해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것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장기적으로 배아를 쓰지 않고도 세포와 조직, 기관까지 배양할 수 있는 대안이 나올지 모른다. 그때쯤 되면 복제 기술은 단지 여분의 수단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37쪽) 그는 시험관아기나 장기 이식이 처음 시도됐을 때도 맹렬한 윤리적 논란이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배아 복제 논쟁을 바라보는 월머트의 관점에는 이 문제를 대하는 과학계의 일반론이 투영돼 있다. "물론 '클론'과 같은 인간 복제나 번식을 목적으로 한 인간 복제는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낭포성 섬유증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인간 단백질을 젖으로 분비하는 양을 만드는 것과 같은 복제 연구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는 배아 줄기세포를 생명으로 보느냐 마느냐 하는 첨예한 논점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이 문제를 뚫고 나가려는 의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새로운 지식의 남용을 두려워하여 우리의 넘쳐나는 창의력에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운명을 비난하기보다는 내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원한다. 유전자 기술과 생식 기술을 널리 이용하는 것은 암흑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광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345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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