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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람의 섬'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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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람의 섬' 가파도

입력
2009.05.1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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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별러 찾아간 섬이다. 가려고만 하면 제주의 바람이 허락하질 않았다. 모슬포 항에 우두커니 서서 쪽빛바다 위의 그 섬 언저리만 바라봤던 게 수차례다. '바람의 섬' 가파도 이야기다.

가파도는 모슬포항에서 국내 최남단 마라도까지 가는 뱃길의 딱 중간에 있다. 모슬포항에서 마라도까지 뱃길은 11km, 가파도까지는 5.5km다. 마라도의 인기에 가려 덜 알려진 섬이다.

처음 가파도에 관심이 끌린 건 억새가 고운 제주의 송악산에 올라섰을 때다. 발 아래로 보이는 가파도의 모양이 아주 특이했다. 물 위에 넓적한 부침개를 띄워놓은 듯 섬은 산이나 구릉, 해안 절벽도 없이 낮고 평평하기만 했다. 몰디브의 섬들처럼 해수면이 상승하면 바로 섬 전체가 물 속에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모슬포항에서 허름한 여객선에 올라 바닷바람을 가르길 20분. 배가 가파도의 상동마을 선착장에 닿았다. 섬의 반대쪽에 가파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하동마을이 있다. 상동과 하동을 잇는 길이 섬의 한복판을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상동 선착장 인근 바닷가, 섬 주민이 본당으로 고이 모시는 할망당을 둘러보고는 하동쪽으로 길을 접어들었다. 길 가 허름한 집들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시선을 붙들었다. 짙은 숲을 이룬 산자락, 기묘한 바위 봉우리,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의 그림들이 이집 저집으로 이어졌다.

이따금 해녀나 갯바위 등 섬 풍경을 그린 그림도 있지만 소나무와 산의 풍경이 벽화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파도 주민들이 꿈꾸는 풍경이 이런 것일까. 뭍에선 흔하디 흔한 소나무와 숲, 산이 가파도에선 이들 그림말고는 찾을 수 없다.

섬의 가운데쯤 길가에 해운사란 절이 보였다. 마라도에 있는 교회와 사찰이 최남단이란 상징성을 살릴 목적으로 교단이 나서서 예쁘게 지은 건물인 반면 가파도의 교회와 사찰은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지어졌다.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것 없는, 슬레이트 지붕의 보잘것 없는 건물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진다.

해운사 뒤쪽은 가파도의 유일한 학교인 가파초등학교다. 푸른 잔디 운동장에 야자수 대여섯 그루가 이국적인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 학교의 학생은 12명이란다.

길가 집들 뒤 들판은 푸른 일렁임으로 가득하다. 바람의 섬 가파도에서 바람을 붙들고 있는 들녘이다. 56만㎡에 달하는 섬 들판 전체가 온통 보리밭이다. 행여 다른 게 섞였다면 바람막이 돌담을 낮게 두른 무덤가에 피어난 들꽃 한두 포기 정도다.

지난 겨울 파랗게 싹을 틔운 보리는 지금 고고리(이삭의 제주 사투리)가 패어 통통하게 무르익었다. 고고리의 무게를 못이겨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드넓은 보리밭이 넘실댄다. 고흐의 밀밭 그림 같은 강렬한 빛의 일렁임이 물결치듯 퍼져 나간다.

가을의 억새가 바람을 그리는 붓이라면 보리가 그려내는 바람의 그림도 억새의 붓놀림에 못지않다. 수확을 앞둔 지금, 드넓은 보리밭의 색깔이 오묘하다. 아직 푸른 청보리와 이미 고개 숙인 담황색 보릿대, 봄볕을 받아 아른거리는 은빛 이삭 등이 서로 어울려 파스텔톤으로 색을 섞고 있다.

그리고 그 보리밭을 캔버스 삼아 바람이 자화상을 그린다. 남쪽으론 마라도와 망망대해를, 북쪽으론 한라산과 산방산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새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무암 돌담의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제주의 바람을 그리고, 물질 하던 해녀가 길게 호흡하는 숨비소리를 그려대고 있다.

가파도(제주)=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가파도… 낚시 황금어장, 제주본섬 조망 한눈에

가파도의 보리밭이 유독 아름다운 건 보리의 커다란 키 때문이다. 다른 지역 보리는 무릎 높이에 불과하지만 가파도의 보리는 1m를 훌쩍 넘는다. 같은 바람에도 더 큰 울림을 그려낼 수 있다.

이곳 보리의 대부분은 맥주나 쌀보리 등으로 쓰이는 '향맥'이란 품종이다. 육지에서 온 전문가들은 '30년 전에 농사짓던 이 보리를 여태 심느냐"고 묻는다. 가파도 주민들이 수확량 낮은 옛날 보리를 고집하는 것은 일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대부분 바닷일이 주업이다 보니 보리에 많은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 가파리 김동옥 이장은 "다른 보리에 비료 10포대가 든다면 이 보리는 2포대면 충분하고, 농약도 다른 보리라면 열 번 칠 것을 한 번만 쳐도 된다"고 설명했다.

내달 중순 보리 수확이 끝나면 보리가 일렁이던 너른 들판은 고구마나 콩이 대신하게 된다. 보리밭 사이사이 놓인 커다란 바위는 선인들의 무덤 고인돌이다. 60여 개가 넘는 고인돌이 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다.

바닷가 이곳 저곳에서 용천수가 솟아 제주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물이 풍족하다는 가파도. 가릴 게 없는 이 섬은 어디에서든 제주 본섬 전체 조망이 가능하다.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 고근산 군산 단산 등 제주의 6개 산을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한눈에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제주에서 이 가파도 밖에 없다고 한다.

관광지 냄새가 물씬 나는 마라도에 비해 가파도는 수수해서 좋다. 이 섬을 찾는 외지인들은 주로 낚시꾼이다. 제주 바다 중에서도 최고 어장으로 꼽는 지역이 바로 가파도 주변 해역. 지금 제철인 자리돔도 가파도 부근의 것을 최고로 친다. 이 섬엔 아직도 해녀 70여 명이 물질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제1회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통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가파도엔 고립된 섬이 지켜온 고인돌처럼 응어리진 제주의 순수가 남아 있다.

■ 여행수첩/ 가파도

● 면적과 주민은 가파도가 마라도보다 크고 많지만 섬을 오가는 배의 횟수나 크기는 그와 반대다. 마라도 가는 초고속 대형 페리 모슬포호는 모슬호항에서 하루 7회 왕복하는데, 가파도로 가는 36톤짜리 작은 어선 크기의 삼영호는 하루 3회뿐이다. 모슬포항에서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4시 출발한다. 뱃삯은 편도 4,000원,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

선실 바닥에는 장판이 깔려 있어 노인들은 배에 타자마자 드러눕는다. 선실 한쪽 책장에는 오래된 만화책들이 꽂혀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어릴 적 읽었던 만화책을 뒤적이는 것도 가파도 가는 배를 즐기는 색다른 재미다. 삼영해운 (064)794-5490,1

● 섬 안에 식당은 세 곳뿐이다. 상동마을 선착장 인근에 가파도 바다별장, 하동마을에 해녀촌과 가파도민박이 있다. 이중 가파도민박은 깔끔하고 푸짐한 찬으로 낚시꾼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6,000원짜리 소라물회나 성게미역국에 딸린 반찬으로 소라젓 자리젓 멸젓(멸치젓) 등 각종 젓갈과 함께 톳무침 문어볶음 자리구이 등 10여가지 접시가 상에 오른다. (064)794-7083

가파도(제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 중문단지서 면세쇼핑 즐기세요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맛있는 음식과 실속 있는 쇼핑이다. 제주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쇼핑 공간이 중문관광단지 안에 생겼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1층에 자리잡은, 3월 말 문을 연 '중문 내국인 면세점'이다.

해외여행을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면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 여행 중 비를 만나거나 뙤약볕을 피하고 싶을 때, 관광지를 대신해 쇼핑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해 진 뒤 무료한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이 면세점은 2,059㎡ 규모로 백화점 명품관과 견줄 정도의 고급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쾌적한 매장에는 화장품과 향수, 시계, 주류, 가방, 지갑, 패션소품, 선글라스, 문구 등 12개 품목 214개 브랜드가 들어와 있다.

이달 말까지 16개 브랜드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개점과 함께 입점한 크리스찬 디올, 겔랑, 불가리, 듀폰 등에 이어 록시땅, 랑콤, 비오템, 아르마니, 디젤 등 유명 브랜드가 곧 입점한다.

또 다른 내국인면세점인 JDC가 운영하는 제주공항점과 달리 중문 면세점은 패션 아이템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비행기 출발 시간에 쫓겨야 하는 공항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에 맞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구입한 물건은 바로 들고 갈 수 없다. 관광객이나 도민들은 면세점에서 계산을 마친 뒤 제주도를 떠나기 직전에 제주공항 2층 대합실이나 연안터미널, 국제터미널에 설치된 물품 인도장에서 항공권이나 승선권, 구매영수증을 제시하고 물품을 수령할 수 있다. 이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중문=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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