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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LG파워콤 황당장애처리사 김민웅·김승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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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LG파워콤 황당장애처리사 김민웅·김승현씨

입력
2009.05.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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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은 '황당장애처리사'.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이런 '황당'한 이름을 달았을까. LG파워콤의 황당장애처리사는 고장 난 인터넷을 고쳐주는 해결사다. 굳이 이런 명칭을 단 까닭은 그간 밝혀지지 않은 원인까지 찾아내는 게 이들의 운명이기 때문이란다.

탄생 배경은 자못 진지하다. LG파워콤 고객서비스지원팀 황당장애처리사 김민웅(40) 김승현(33) 대리는 "기술발달로 갖가지 정보통신 기기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면서 이들이 서로 전파를 방해하기도 하고, 다양한 요소가 뒤엉켜 전혀 몰랐던 원인이 인터넷을 마비시키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이들의 활약기는 역시 '황당하다.'

인내심은 필수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잔뜩 독이 오른 남자는 "인터넷이 안 돼 100만원을 날렸다"고 했다. 이유인즉 온라인게임 도중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 게임 속 장비 100만원어치를 잃은 것. 까딱하면 100만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김민웅 대리는 "제일 먼저 하는 게 아부"라며 "일단 고객을 응대하면 머리부터 발 끝부터, 심지어 그 집 개도 칭찬해 화를 가라앉히는 일이 급선무"라고 웃었다. 인터넷 설치기사도 해결하지 못한 경우에만 일이 넘어 넘어오기 때문에 고객은 열이면 아홉은 화의 절정에 도달해 있다.

문제 해결은 '무조건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임 접속 불량 해소를 위해 무작정 게임부터 시작했다. 게임 마니아들에게 수소문도 했다. "게임 하다 인터넷 끊긴 적이 많으세요?" 꽤 다수가 동일한 게임화면에서 멈추곤 한다는 정보를 얻은 뒤 해당 게임회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결국 패치(업그레이드)가 문제였다. 프로그램을 새로 깔고 나니 이상 무! 무려 30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새 게임 전문가가 돼 있었다.

밤낮 구분도 없다. 어떤 고객은 새벽1시만 되면 인터넷 전화가 먹통이란다. 득달같이 달려가 남의 집 전선부터 전화모뎀, 집 구석구석을 뒤져도 마땅히 나오는 게 없다.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아파트 앞에 커다란 무전기가 달린 차가 눈에 띄었다. 차 주인을 찾아내 화를 달래며 차를 옮겨달라고 싹싹 빌었다. 그제서야 인터넷전화가 터졌다. 알고 보니 차량무전기의 전파방해가 전화 먹통의 원인이었던 것. 이를 놓치지않고 잡아내는 눈썰미도 대단하다.

덕분에 '얼리 어답터'(신제품 사용 선구자)가 됐다. 김승현 대리가 가입한 동호회만 200여 곳. 그는 "자동차 오디오 휴대폰 MP3 전자기기 등 새로운 통신 및 전자기기가 나오면 무조건 동호회에 가입해 모두 파헤쳐 보는 게 일이자 취미"라고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선 각종 장비로 집을 가득 메워 싫은 소리를 들을 법도 한데 아내는 이미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란다.

험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번은 PC방에 인터넷을 깔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가보니 불법 성인 PC방이었다. 거절하자 주인이 "설치 전엔 보내주지 않겠다"며 그들을 감금했다. 난처해진 김승현 대리가 잔꾀를 냈다.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부터 연결해야 해요." 전봇대 위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SOS를 친 후 경찰이 출동해 무사히 빠져 나왔단다. 그러나 인연은 질겼다. 자신을 감금했던 성인PC방 주인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 것. "후배 교육차원에서 어느 집에 인터넷을 깔아주러 갔는데, 그 집 주인이 바로 PC방 주인이지 뭐에요." 결국 흠씬 두들겨 맞은 후에야 돌아왔단다. 그는 '세상 참 황당하게 좁데요'라고 했다.

인터넷만 고쳐주는 게 아니다. 인터넷이 안 되서 가봤더니 컴퓨터 주위가 쓰레기 더미였다. 꼬박 2시간동안 치우고 전선을 따라 가보니 반지하 건물이라 전선 연결이 잘 안됐던 것. 간단히 해결했다고 뒤돌아서는데 들리는 말은 "고맙습니다"가 아닌 "원상복귀 해주세요"였다. 알고 보니 고객은 화가였고, 황당장애처리사가 열심히 청소한 쓰레기더미는 정물화의 소재였단다. 캔버스에 그려진 스케치를 보고 다시 먹다 버린 음료수며 종이뭉치, 먼지 하나까지도 다시 쌓아줬다.

심지어 이혼도 막는다. "인터넷 전화 설치했다가 이혼당하게 생겼어요. 당장 책임져요." 황당한 요구였다. 찬찬히 들어보니 인터넷 전화를 설치했는데 하필 부인한테만 전화가 안 걸린단다. 백수남편이 하루 수십 통 부인한테 전화를 하는데, 부인은 안 왔다고 난리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확인해보니 유달리 부인 휴대폰으로만 전화가 안 걸린 까닭은 전화모뎀이 숫자 '4'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역시 무조건 부딪혔다. 집에서 자주 거는 번호를 쭉 나열해봤더니 부인 휴대폰 번호에만 있는 숫자 '4'가 유달리 눈에 쏙 들어왔단다. 전화모뎀을 바꾸고 나니 부인전화가 반갑게 울렸다.

그래도 인터넷이 연결되면 다행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사건도 많다. 다른 데서는 다 잘 되는데 유달리 거실에서만 인터넷이 안 되는 집이 있었다. 4일 동안 끙끙거리며 PC부품까지 모조리 바꿔가며 해봐도 안됐다. 결국 고객은 다른 업체로 갔다. 둘은"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울 때"라고 했다. "고객들한테 욕도 들어보고 험한 일도 많이 당했지만 무엇보다 해결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고객을 놓치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보람과 꿈이 있기에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 같아요. 해결하지 못한 일이 한 번에 자연스럽게 해결되면 그 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죠."(김민웅) "몸으로 부딪혀야 하고 시간과도 싸워야 하고, 그렇다고 전문서적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후배들에게는 좀 더 많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가능하면 관련 책도 펴내고요."(김승현)

인터넷과 관련해 황당한 일이 벌어지거든 당장 이들을 부르라. 제주부터 비무장지대까지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단다.

▦황당장애처리사가 귀띔하는 인터넷 관리법

-인터넷이 끊기면 먼저 IP주소가 정상적으로 할당되는지 여부를 확인해라.

-할당된 IP주소가 올바르지 않다면 랜카드와 랜선들을 점검해라.

-컴퓨터 청소도 필수다.(틈틈이 악성 바이러스 보안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불필요한 파일을 제거해라)

-인터넷전화 설치 시 필요한 무선 공유기는 되도록 가전제품(전자레인지 TV 냉장고)과 멀리 설치해라.

-항상 쾌적한 온도를 유지해라.(과도한 열과 습기는 전파를 방해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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