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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온다/ 파리서 미리 만난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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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온다/ 파리서 미리 만난 르누아르

입력
2009.05.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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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28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행복을 그린 화가 - 르누아르' 전을 앞두고 르누아르의 흔적을 찾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인상주의 미술의 보고인 오르세미술관과 오랑주리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 오르세미술관의 '시골무도회'

평일 오전임에도 길게 줄을 선 뒤에야 오르세미술관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1900년 기차역으로 지어졌다가 1986년 인상파 등 19세기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오르세는 오늘날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관의 하나다.

인상주의 작품이 모여있어 오르세의 핵심으로 불리는 5층. 모네와 반 고흐의 방을 지나 인파를 따라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니 32ㆍ33 전시실. 그곳에 흔히 '햇살 속의 누드'로 불리는 르누아르의 '습작, 토르소, 빛의 효과'(1875~6)와 '그네'(1876)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두 그림 속 인물들 위에 쏟아진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두 작품은 인상주의 화가로서의 르누아르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다. 1876년 제2회 인상파전에 출품된 '햇살 속의 누드'는 당시 한 기자로부터 "썩은 살 덩어리"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빛의 변화를 강렬하게 드러낸 르누아르의 기법이 그만큼 당시 미술계에 충격 그 자체였음을 드러낸다.

'그네'는 르누아르의 몽마르트 화실 정원 풍경을 담고 있다. 햇빛을 받은 여인의 드레스는 물론 그림자마저도 빛으로 일렁인다. 그림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에밀 졸라는 소설 '사랑의 한 페이지'에서 '그네'의 장면을 인용했다.

르누아르의 작품만으로 꾸며진 39 전시실에는 180㎝ 높이의 대작인 '시골무도회'(1883)와 '도시무도회'(1883)가 나란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관람객들이 무도회 연작을 함께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곧 두 작품은 헤어진다.

'시골무도회'가 한국으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1870년대 말 인상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스타일로의 변화를 모색했다. '시골무도회'는 그런 그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비슷한 구도의 '그네'에 비해 윤곽선이 뚜렷해졌고, 과거 붓으로 뭉개 그렸던 나뭇잎의 형태도 정교해졌다.

1881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접한 라파엘로의 작품이 그의 변화에 영감을 제공했다. 르누아르의 친구 폴 로트와 춤을 추며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알린느 샤리고다.

■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하모니

모네의 '수련' 연작이 소장된 오랑주리미술관도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르누아르를 비롯해 세잔, 모딜리아니 등 대가의 작품이 많다. 오랑주리의 특징인 자연채광 아래 걸린 인상주의 작품들은 한결 더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곳은 역시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과 '피아노 앞의 이본느와 크리스틴느 르롤'(1897). 당시 부르주아 가정의 필수품이었던 피아노 앞에 있는 그림 속 여인들은 한 곳을 응시하며 미소를 머금고 있다. 두 그림은 르누아르가 미술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시기에 그려졌다.

1892년 처음 정부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은 그는 같은 주제로 넉 점의 그림을 그릴 만큼 정성을 쏟았다. 한국에서 전시될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그 넉 점 중 하나로,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평생 간직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광대 복장을 한 코코'(1909)는 르누아르 말년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 코코는 르누아르의 셋째 아들 클로드의 열 살 때 모습이다. 르누아르는 아이들을 자주 모델로 삼았는데, 클로드는 훗날 "광대 복장의 흰색 스타킹을 신기 싫었는데 부모님의 회유와 야단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 한국에 오는 르누아르의 정수

'행복을 그린 화가 - 르누아르' 전은 오르세, 오랑주리를 비롯해 세계 40여 곳의 미술관과 개인소장자들로부터 작품을 가져온다. 르누아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색채가 아름다운 것으로 꼽히는 '바느질하는 마리 테레즈 뒤랑 뤼엘'(1882)는 미국 클락미술관 소장이다.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라 대여가 불투명했는데 최근 극적으로 복원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전시작에 합류했다. '바위에 앉아있는 욕녀'(1892)는 르누아르 작품을 가장 많이 거래한 화상 폴 뒤랑 뤼엘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어 전문가들도 보기 힘든 그림이다.

르누아르는 생전에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기에 일찍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 전 세계로 작품이 흩어져나갔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작품들이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리는 것이다. 한국의 관람객들에게 분명 큰 행운이고, 축복이다.

파리=글·사진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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