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요즘 점점 '사오정'이 되어가십니다. 자꾸 엉뚱한 말씀을 하고 두세 번 얘기를 해야 그제야 "응, 알았어"하시고도 금방 다르게 알아듣고는 혼자 해석하시곤 하죠.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면 좀 나은 편이에요. 전화통화를 하면 답답해서 속상할 지경입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엄마, 이따 택배 온다는데 집에 안 계세요?" "택시타고 온다고? 돈이 썩어 나네, 이 지지배." "아니 택배! 택!배!! 이따 4시쯤에 온다고 전화왔어." "4시쯤에 전화해 그럼." "무슨 소리야. 4시쯤에 택배 온다고 했으니까 집에 있으면 좀 받아줘."
집에 가서 엄마한테 그랬죠. "엄마는 왜 자꾸 말을 이상하게 알아듣고 먼저 끊어? 내 말 좀 잘 들어봐, 답답해 죽겠어." "안 들려. 너도 나이 먹어봐." 말을 찬찬히 해도 우리엄마는 듣고 싶은 말만 쏙쏙 골라서 들으시곤 다른 말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십니다.
제가 첫 월급 탄 날 엄마한테 용돈을 부쳐 드리고 전화를 드린 적이 있어요. "엄마, 용돈 부쳐드렸으니까 사고 싶은 거 사. 그리구 오늘 좀 늦게 들어갈 거 같으니까 먼저 주무세요." "고마워. 아껴서 잘 쓸게. 딸 최고!" 그런데 그날 밤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냐면서 막 화를 내십니다. "아까 늦는다고 얘기 했잖아." "용돈 부쳤다는 말만했지, 언제 늦는다는 얘기를 했냐?"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고 배가 고파 라면 물을 올려놓고는 화장실로 가서 얼른 샤워를 하고 있었죠. "(큰 소리로) 엄마~. 수건 좀~!" "…" "(다시) 엄마~!! 수건 좀 줘요!!" "…"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금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수건 좀 달라니까!!!" 엄마는 그제서야 "수건? 진작 달라고 하지, 소리를 질러 기지배가." 무슨 저희 집이 대궐마냥 큰 것도 아니고 안방 문 바로 옆 화장실에서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 때문에 엄마랑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그러시는 거에요. "얘, 너 혹시 가스불 켜 놨니? 물 끓는 소리 들리는 거 같은데?" 아뿔싸, 그때야 라면 물 올려놓은 것이 기억 나더군요. 부랴부랴 부엌에 가서 다 졸아붙은 냄비에 물을 다시 부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거 있죠. 분명 안방에선 부엌보다 화장실이 더 가깝고 물 끓는 소리보다는 제 목소리가 비교도 안될 만큼 컸을 텐데 엄마는 어떻게 제 목소리는 못 듣고 물 끓는 소리는 들으셨을까요?
"엄마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 듣고싶은 소리만 골라 듣는 재주. 난 들리지도 않는 물 끓는 소리가 어떻게 들렸대?" "니가 더 이상하다야. 가스 새는 소리가 왜 안 들리냐? 엄마는 돈 새는 소리가 제일 잘 들려." 역시 울 엄마다운 대답을 듣고 나니 할말이 싹 없어지더라구요.
엄마, 그래도 내 말 좀 쪼끔만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나 엄마랑 얘기하면 너무 목이 아파요. 그리고 엄마 말만 하고 먼저 전화 끊지 말아줘, 나도 할 말 있는데… ㅠㅠ.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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