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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경계의 슬라브 국가를 가다] <4> 금융위기로 가라앉은 두 마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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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경계의 슬라브 국가를 가다] <4> 금융위기로 가라앉은 두 마리 용

입력
2009.05.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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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도로를 점령했다. 내리막길에서 앞을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이 끝이 없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울화통이 터질 수준이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도심을 관통해 5㎞ 이동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 대사관측은 "차량 30만대를 예상하고 키예프 도로를 설계했는데 벌써 100만대가 넘었다"고 설명했다.

대출로 쌓인 거품

독립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우크라이나 경제는 2000년대 들어 매년 10%가 넘나드는 고성장 기조를 유지했다. 키예프 시내에 벤츠, 렉서스, BMW 등 고급 차들이 밀려왔고 명품 매장이 도심 지하상가에 속속 들어섰다. 56㎡(17평) 크기의 아파트가 3억원을 넘는 등 집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기간 우크라이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로만 보면 벨라루스와 함께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1980년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아시아 4마리 용'에 비견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자생적 경쟁력이 아니라 외부환경과 빚에 의지한 탓에 우크라이나 경제에는 심각한 거품이 쌓여가고 있었다.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주택,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은행 돈으로 구매한 후유증이 특히 심각했다. 현지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올해 들어 판매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데다 대출금까지 회수가 안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자금회수가 되지 않는데다 시장전망까지 불투명해지자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철수하고 있다.

재개발을 통해 신흥 부촌으로 탈바꿈한 키예프 구도심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로는 썰렁했고 짓다 만 건물이 곳곳에 서있다. 완공한 건물도 텅텅 비었고 문 앞에는 집주인이 내건 매매, 임대 안내판이 요란하게 붙어 있었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역설적으로 삶의 질에 별다른 영향을 못 끼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산층이 붕괴한 상황에서 부유층은 경제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빈민층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외환보유고도 바닥

소비에트식 폐쇄경제를 고수하며 금융위기의 예봉을 피하기를 기대했던 벨라루스의 경제 사정도 우크라이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최고 18%라는 놀라운 성장기조를 이어가며 새로운 물류중심지로 각광 받았지만 내재적 발전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지정학적 장점에 따른 성장인 탓에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2006년부터 개방경제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소비재, 사치품 수입이 급증했고 무역적자가 외환보유고를 바닥낼 정도로 늘어났다.

수출입의 30%를 차지했던 러시아 경제가 침몰하면서 중공업 제품을 수출하며 재미를 봤던 이점도 사라졌다. 가스분쟁으로 러시아가 가격을 대폭 인상하자 충격은 더했다. 독일 등 유럽국가의 수백 개 업체가 투자를 보류했고 자체 소비재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물가는 더욱 뛰었다. 지정학적 이점을 이용해 러시아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여러 차례 자금지원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당장 경기하강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게 기업인들의 전망이다.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두 나라는 자체 산업기반이 매우 취약해 러시아를 비롯한 외부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회복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키예프ㆍ민스크=강철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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