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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온다/ 기고 - 르누아르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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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온다/ 기고 - 르누아르의 삶과 예술

입력
2009.05.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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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창조성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힘에서 나온다. 창작을 할 때 예술가들은 깊이 몰입한다. 이 몰입이 바로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가 된다. 뛰어난 예술가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길어 올린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그 위대한 창조자의 한 사람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한 번 본 사람은 결코 그 특유의 스타일을 잊지 못한다. 털실처럼 부드럽고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붓질, 화사하고 화려한 색채, 탐미적인 데다가 에로틱하기까지 한 감각이 어우러져 우리의 눈뿐 아니라 영혼을 즐겁게 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살아 오른다.

르누아르는 이런 말을 했다. "그림이란, 벽을 장식하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화려한 것이 좋다.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 그래, 예쁜 것이어야 한다."

그림은 무엇보다 심오하고 심각하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르누아르의 이 말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는 평생 그저 예쁜 게 좋아서 그림을 그렸다. 꽃과 과일, 여인이 예뻐서 그들을 그렸다. 그밖에 뭘 더 바라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데.

르누아르의 내면은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세계에 대한 낙관으로 충만했다. 그게 각박한 세상에 치여 메말라 버린 우리의 감성을 때린다. 주어진 만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주어진 만큼 삶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이런 그의 예술을 보노라면 그는 날 때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구김살이 없이 자랐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한 화가도 드물었다.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는커녕 일찍부터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도자기 공장에 취직했는데, 화재(畵才)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샤를르 글레르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으나 배움을 마치고도 아틀리에를 마련할 돈이 없어 친구 바지유의 화실에 얹혀 지냈다. 물감을 사지 못해 그림을 못 그릴 때도 있었으니 그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좌절과 고통을 그림의 주제로 삼지 않았다. 늘 예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세계를 그리고 싶어 했다. 그게 그의 본성이었다. 그는 본성에 충실했다.

노년에는 류머티즘에 걸려 붓을 들기도 힘들었지만, 죽기 몇 시간 전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간병인에게 꽃을 준비하라고 한 그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쁜 꽃을 그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 그였다.

후배 화가 모리스 드니는 그런 그의 예술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눈에 비친 즐거움을 매개로, 그는 여인과 꽃으로 멋진 부케를 만들었다." 비평가 옥타보 미르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르누아르는 아마도 우울한 그림은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화가일 것이다."

르누아르 연보 (Pierre-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 프랑스 리모주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

▲1844년 파리 루브르가로 이주

▲1854~1860년 도자기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화가의 꿈 키움

▲1861년 샤를르 글레르의 화실에서 시슬레, 모네, 바지유와 만나 친구가 됨

▲1862년 왕립미술학교에서 수학

▲1864년 살롱전 입선

▲1874년 수차례 살롱전 낙선 후 제1회 인상파전 참여

▲1879년 인상파전 대신 살롱전에 전시. 초상화 주문으로 경제적 안정 찾음

▲1881년 알제리와 이탈리아 여행. 라파엘로의 작품에 감명받음

▲1883년 '시골무도회' 등 무도회 연작 완성

▲1885년 모델 알린느 샤리고와의 사이에서 장남 피에르 출생

▲1890년 알린느 샤리고와 결혼. 이후 장, 클로드 등 3남을 둠

▲1892년 프랑스 정부가 '피아노 치는 소녀들' 구입

▲1900년 프랑스 문화훈장 수훈

▲1908년 건강 악화로 프랑스 남부 카뉴쉬르메르로 이주

▲1915년 부인 알린느 사망

▲1919년 12월 3일 카뉴쉬르메르의 집에서 사망

이주헌ㆍ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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