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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최고의 화가 안진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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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최고의 화가 안진의에게'

입력
2009.05.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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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준비했던 전시회 오픈식이 열렸다. 마침 갤러리는 아담한 잔디밭이 있는 예쁜 공간이다. 키 큰 은행나무가 담을 이루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5월 맑은 밤공기를 벗하며, 그렇게 조촐한 파티를 가졌다. 매번 전시회 오픈이면 음료를 주고 받고는 이내 배가 고프다며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었는데, 이번엔 그림을 걸어놓고 그 곁에 오래오래 머물며 지인들과 긴 호흡을 나눌 수 있었다.

바비큐 그릴에 고기와 통닭을 올리고 고구마와 옥수수도 구웠다. 감자 샐러드에 노란 계란 가루를 뿌려 멋을 내고, 따끈한 국물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 커다란 들통에 어묵도 끓여냈다. 청담동 어느 바에서 보았다며 친구는 파인애플 속을 파서 즙을 내고, 빈 파인애플 속에 소주를 넣어 멋진 파인애플주도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갓 해 놓는 게 맛있다고 즉석에서 잘생긴 쪽파로 파전도 부치고 매콤한 골뱅이도 무쳤다.

예쁘게 치장하고 우아하게 손님을 맞이해야 할 터인데, 새벽부터 일어나 장을 보고, 오픈 시간 얼마 전까지 오징어 썰고 계란 삶았다며, 장난스럽게 고생한 티도 냈다. 멀리서부터 축하와 관심으로 모여 준 지인들에게 고마움으로, 그렇게 즐거운 저녁을 준비했다. 도와준 친구와 후배, 제자들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행복한 노동이다.

전시장 계단엔 화환과 난분이 몇 개 놓였다. 화환을 보내지 말아 달라 해도 화환이 오고 때론 난분이나, 꽃바구니, 케이크, 축전, 책 선물이 놓인다. 전시 초대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어렵게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전시 개막식 초대가 민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가끔 하는 전시도 아니고 자주 전시를 하게 되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최근에 미술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내 전시도 성황리에 잘 될 거라는 격려의 인사도 받았다. 더 나아가 '매출을 위하여'라는 민망한 건배사도 듣는다. 작품 구입 의사에 슬그머니 입이 벌어지는 것을 감추지 못하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매출'이라는 단어에는 몸이 움찔해지고 고개가 떨어진다. 참석하신 분들이 작품 한 점씩은 모두 사 가주시길 바란다는 축사에는 몸이 배배 꼬이기까지 한다.

많은 미대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많은 작가들이 화단에 입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작품을 소장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작가들이 그림을 업으로 삼기도 힘들다. 물론 미술에 대한 관심과 향유 지수가 높아지긴 하지만, 그림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해마다 이렇게 근근이 전시를 치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시끌벅적한 잔칫상을 잠시 벗어나 갤러리로 들어가서는 홀로 커피 한 잔과 그림을 마주했다. 1년 여 작업실에서 고군분투했던 그림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얼마 전 잡지사 인터뷰 중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뭐하냐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림을 생각한다는 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취미를 살릴 겨를도 없었고 그저 그림 그리다 밥 먹으러 가고, 그림 그리다 강의하러 가고, 그림 그리다 사람들 만나고, 그림이 생활의 시작이 된 지 아주 오래되었다. 그림은 일상이 되었고, 그런 일상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전시회가 된 셈이다.

오픈식 뒷정리를 하고 귀가하니 초등 1학년 딸아이가 배를 내놓고 쿨쿨 자고 있다. 테이블에 빨간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과 함께 '최고의 화가 안진의에게'라는 편지가 있다. 아이에게만큼은 오늘도 최고의 화가로 대접 받는다. 이번 전시를 오픈하며 듣는 최고의 칭송이 아닐 수 없다.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 소중한 친구, 후배, 제자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한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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