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사망사고)사건 발생 후 사단의 입장 발표를 관행대로 공보담당 소령에게 맡겼고, 이 장교는 사죄하는 태도가 아니라 해명하는 자세를 보였는데 이는 사고 발생시 깊이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한국문화에 비춰 볼 때 큰 역풍을 초래하는 실수였다. 이는 결국 한국인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됐고, 전국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그때 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 미2사단장을 역임했던 러셀 아너레이(사진) 예비역 중장이 당시 사건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담은 책, <생존> (SURVIVAL)을 6일 발간했다. 생존>
현재 CNN의 재난 전문가로 활동중인 아너레이 장군은 이 책에서 재임 당시의 경험을 5페이지에 걸쳐 할애하고 있다.
2000년 9월 워싱턴의 국방부에 근무하다 2사단장 발령을 받은 그는 건강검진에서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으나 부임을 강행했다. 영관 장교 때 한번 근무한 한적이 있어 "한국 사람들을 잘 안다고 자부했고, 한국 문화와 전통도 존경해 왔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부임했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맞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여중생 사망사건은 좁은 도로에서 장갑차 운전병의 시야가 제한된 상황 등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지적하고 특히 한국이 월드컵 개최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반미와 북한에 유화적인 젊은 정치인들로 교체되던 시기에 발생해 여중생들의 비극적 죽음은 반미세력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발화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아너레이 장군은 당시 실수를 교훈으로 삼아 2005년 카트리나 구조작업을 지휘할 당시에는 참모들이 써준 '말씀자료' 대신 직접 보고 파악한 바를 토대로 이재민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해 호응을 받았다면서 "2002년 한국사태나 2005년 루이지애나 사태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리더의 한마디"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02년 7월19일 시위대가 동두천 캠프 앞을 에워싼 가운데 연병장에서 열린 자신의 이임식과 관련, "시위대가 미군철수를 외치고, '아너레이는 살인자'라고 적힌 피켓을 보면서 한국을 떠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고 실망스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임식이 끝나자마자 시위대의 캠프 진입을 막기위해 부사단장이 병력을 이끌고 출동할 정도였다면서 "당시 캠프에는 소수의 경찰병력만 출동해 시위를 막고 있었다"며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미군은 50여년간 한국에 주둔하며, 특히 한국전에서 3만3,000명이 숨지고, 10만3,000여명이 부상하는 등 많은 희생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 주둔하면서도 문화적 교류가 거의 없어 미국인들이 소외되는 문화였다"며 문화적 교류의 부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뒤 "한국에 대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을 한 명도 기억할 수 없다"며 거듭 유감을 표시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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