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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3) 공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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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3) 공사장에서

입력
2009.05.0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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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서 - 박형준

지구가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허공에서 소리치는 저들도

떠돌이별쯤은 되리

어느 궤도를 돌아

별똥을 소진하며

운행해 왔는지

지상의 매달릴 것은 모두 버리고

허공으로 허공으로 떠밀려 간다

뉴타운 공사장 한편

포크레인이 내리찍을 듯

포위하고 있는 건물 옥상에서

제자리를 지키면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제 궤도를 돌고 있는 떠돌이별들

무너져 가는 변두리

담벼락 밑

희미한 낮별들이 내지르는 소리

지상에서는 못 듣는 자전(自轉)의 소리처럼

몰래 봄 풀씨들의 행성이 피어나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벽걸이 괘종시계가 여전히 초침 소리를 내며

깨어진 액자 사진 속에서

파리똥과 쥐오줌 자국에 덮인

누렇게 바랜 일가족의 우주를

느리게 천천히 운행하고 있다

● 별은 고단한 삶 위에 뜨는구나. 시를 읽으니 아리랑 한 곡조가 생각난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수심도 많다….' 깜박이는 별들과 가난한 삶은 서로 응시하며 함께 얼마나 위안을 얻어왔던가? 지친 떠돌이 하나가 별똥별의 꼬리 같은 곡선을 지상에 그으며 한 생(生)을 지나간다. 우주의 어느 변두리에서 이름 없는 별 하나도 그렇게 한다. 서글퍼라. 태어났으니, 때로 쓴물이 때로 단물이 바위의 구멍을 오가는 파도처럼 계속 이 한 몸을 괴롭히고, 별들은 내가 온 길을 똑같이 따라왔는지 어느새 이마에 닿을 듯 내려와 있네. 괜찮다 괜찮다…. 저 별이 나처럼 못난 표정을 지으며 어눌한 말 한 마디 소주잔처럼 건네네.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 박형준 1966년 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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