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는 다소 이례적이다. 기존 회의가 '대책'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날 회의는 '진단'에 무게가 실렸다. 정부가 현 경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회의였던 셈이다.
정부의 의도는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당분간 경기 부양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온통 어둡고 신중한 경기 진단으로 가득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저기서 "봄이 왔다"고 기지개를 펴는데, 정부는 오히려 외투를 더욱 동여매는 모양새다.
■ 경기 진단, 신중 또 신중
경기 급락세가 진정되고 일부 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이라는 데는 정부도 동의한다. 경기침체가 갈수록 심화되는 선진국들과 달리 올 1분기에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플러스(0.1%)로 전환했고, 광공업 생산 역시 전달 대비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수출 감소폭이 축소되면서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금융시장엔 연일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진단은 몹시 신중하다. 경기 회복 추세가 지속될 거라고 예단하기에는 회복의 강도가 너무 미약하고 여전히 대내외 위험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실업자 100만명 돌파가 확실시되는 등 고용사정은 악화일로에 있고, 내수 역시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나 아직은 민간의 자생적인 경기 회복력이 미흡해, 정부가 진통제 투여를 중단하는 순간 다시 경기가 급격한 하강세로 돌아서는 '더블 딥'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또 다른 대목은 더딘 구조 개혁에 따른 성장활력 저하. 국내총생산(GDP)대비 기업의 부채비율은 우리나라의 경우 112.8%로 미국(77.0%) 호주(81.4%) 일본(102.1%)을 크게 웃돈다.
정부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기업들이 비용절감 등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가볍게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간 높은 환율과 금융 지원 등으로 체질 개선 노력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당분간 유동성 흡수는 없다
이 같은 경기 진단은 현재의 정책 기조 유지로 이어진다. 당분간 확장적인 거시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민간 부문이 자생적인 경기 회복력을 보일 때까지는 예산 조기 집행, 차질 없는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 재정의 경기보완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과잉 유동성 논란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부동산이나 증시로 급격히 자금이 몰리는 등 과잉 유동성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 이런 와중에 확장적인 거시 정책은 자칫 과잉 유동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면밀히 모니터링을 하겠지만 현 상황이 과잉 유동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성 환수에 나선다면 추가적인 경기 위축을 부를 수 있다"며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환수할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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