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업이 우선일까, 좋은 가격이 우선일까?' 이는 가치투자자 사이에서 계속 돼온 논란거리 중 하나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가격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그 제자인 워렌 버핏은 좋은 가격에서 시작해 좋은 기업 쪽으로 가중치를 옮겨왔다. 한국의 가치투자자도 여기에 따라 스타일이 구분된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무리 좋은 기업이더라도 좋은 가격이 결부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주식이 될 수 없다는 것. 송강호가 출연한 '놈놈놈'과 초로의 할아버지가 나오는 '워낭소리' 모두 좋은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놈놈놈'의 투자수익률은 '워낭소리'가 낸 3,000%의 수익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워낭소리'의 제작비가 1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식에 있어서도 싸게 사지 않으면 좋은 주식에 걸맞은 수익률을 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양자간 균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새로운 투자 등급으로 접근해보길 권한다. 바로 필자의 회사에서 사용하는 '웨이트앤바이'(Wait&Buy)라는 등급이다. 시장에서는 보통매수, 시장상회, 중립, 매도 등의 등급을 사용하는데, 이중 매수라는 등급에만 목을 매면 좋은 기업 혹은 좋은 가격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돼 균형점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사실 폭락장이 아니면 좋은 기업이면서 가격까지 싼 주식을 딱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웨이트앤바이는 문자 그대로 '기다렸다가 산다'는 의미다. 좀더 풀어보면 사전에 발굴과 분석 작업을 통해 좋은 기업을 찍어두고 좋은 가격이 오길 기다렸다가 원하는 가격에 매수한다는 뜻이다. 이 방법은 '웨이트'라는 과정 때문에 높은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탁월한 장점 하나를 가진다.
보통 좋은 기업이 싼 가격이 될 때는 단기적으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 시점에서만 보면 좋은 점은 안 보이고 나쁜 점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사지 않게 되는데, 후일 좋은 기업 특유의 장점이 단점을 압도하면서 주가가 올라가면 그때서야 사지 않은 행동이 실수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기다렸다 산다는 관점에서 미리 이 기업의 장점들을 봐두었다면 단기적인 악재가 돌출되었을 때, 이 영향력을 정확하게 파악해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즉 미리 준비해둔 덕에 좋은 기업을 싸게 산다는 환상적인 행동을 현실 가능하게 해준다.
예컨대 버핏이 '웨이트앤바이'라는 등급을 사용한다고 천명하진 않았지만 같은 맥락의 접근을 했기 때문에 1970년대 샐러드유 스캔들 때 아멕스를, 87년 대폭락 때 코카콜라를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다림의 과정 없이 표면적으로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단지 좋은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종목을 샀다면 버핏과 유사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버핏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명화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투자자들도 '기다림의 미학'을 익혀 저렴한 비용으로 한국의 명화들이 가득 찬 미술관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