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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신종 플루와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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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신종 플루와 세계화

입력
2009.05.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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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신종 인플루엔자 공포에 떨고 있다. 우선 매우 빠른 전염속도 때문이다. 3월 중순 멕시코에서 첫 감염환자가 확인된 이후 한 달도 안 돼 20 여개국으로 확산되는 무서운 전염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무서운 치사율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16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은 공포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전염병 세계화'에 공동대처를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유행성 인플루엔자 경보를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인 5단계까지 높였다.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2개 이상 국가에서 발생할 때 발령하는 경보 수준이다. 세계 각국 보건당국도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검역을 강화하고 신종 인플루엔자 발생국 여행을 자제하게 하고 치료제 타미플루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가히 '전염병의 세계화'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다. 세계화로 인하여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대폭 증가하면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 또한 정보화의 진전으로 이러한 사실이 세계 구석구석에 신속히 전달된다. 병의 전염과, 정보와 공포감의 확산도 신속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여전히 느리고 부족하다. 바로 전염병의 세계화와 같은 세계적 위험에 대한 공동대처 노력이다. 위험은 세계화했지만 대처는 여전히 개별 국가에 맡겨져 있다. WHO가 위험경보를 발령하고 정보를 제공하지만 WHO의 역할은 거기에 그치고 있다.

필요한 조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취할지는 개별 국가의 몫이며, 예방약이나 치료제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은 주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비즈니스에 맡겨져 있다. 위험이 세계적 성격의 것이라면 그 대처도 당연히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세계적 전염병 자체의 위험 못지않게 큰 위험이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위험 대처의 효율성을 증대시켜야 한다. 물론 개별 국가들은 각자 다양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다. 홍콩은 호텔에 묵고 있는 멕시코 여행객이 환자로 밝혀지자 투숙객 전체를 연금했다. 일본은 환자가 발생한 한국을 여행주의국으로 지정했다. 중국은 멕시코와 미국으로부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시켰다.

또 많은 개도국들이 마스크와 치료제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전염병 확산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개별 국가들의 대응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심스럽다. WHO가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모든 나라가 이를 공통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전염병의 세계화에 따른 위험 부담과 희생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의료체계를 잘 갖춘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후진국들은 전염병의 세계화에 따른 위험에 다르게 노출돼 있다.

다행히 이번에 유행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는 아직까지는 독성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 초 세계적으로 무려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경우, 최초 발병 이후 몇 개월 만에 다시 나타난 2차 전염 때 대부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인플루엔자도 이런 위험이 크다는 점에 경각심을 늦출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희생자는 대부분 못사는 나라에서 나올 가능성이 큰 반면, 선진국의 다국적 제약 회사들에게는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선ㆍ후진국 '불평등' 극복해야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이 필수적이다. 세계적 전염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과 판매를 민간영역에만 맡겨두지 말고, WHO와 국제 원조기구들이 적극 나서서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이 세계화를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함께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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