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 인도의 콘크리크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대신 녹색 탄성포장재를 덮은 곳이 많다. 무릎을 다친 아내에겐 푹신푹신한 탄성이 고맙지만, 갈 곳을 잃은 물줄기를 생각하면 삭막한 포장재가 야속하기만 하다. 정부는 우리나라는 곧 물이 부족할 것이고, 지구가 더워지면 더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최근 '여행(女幸ㆍ여성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내의 딱딱한 인도를 부드럽고 걷기 편한 길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인해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마당에 화학합성제인 탄성포장재로 인도를 덮어 부족한 물 길마저 차단하는 것은 수자원 차원뿐 아니라 도시생태계의 건전성에도 이로울 리가 없다. 흙과 토양이 물을 좀 더 많이 보존하고, 온실가스를 조금이나마 더 빨아들이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오고 가며 순환하고 있다. 물과 온실가스도 예외일 수 없다.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온실가스는 또 어떤가. 이에 대한 해답은 흙과 토양이 지닌 고유의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은 지표를 통해 흡수되고, 이렇게 저장된 물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합리적인 물 관리는 쓰는 양과 가두는 양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들쭉날쭉해질수록 물을 가두는 정책은 더욱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빗물저장 시설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자연스러운 '흙의 효능'을 많은 예산을 들여 봉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돈을 들여 인공시설을 만들고 있다.
물은 우리의 땅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물이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이라는 표현처럼 바다로 들어간 물은 이미 우리의 물이 아니다. 시멘트나 탄성포장재 같은 피복제로 도시를 온통 덮으면서 물 부족을 얘기하는 것은 모순이다. 온실가스 문제도 비슷하다. 물과 온실가스 문제는 이들이 오고 가는 자연순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근본에는 흙과 토양이 이들의 순환을 가장 효과적으로 매개한다는 섭리가 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및 청정에너지 개발보다 온실가스 배출규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온실가스를 온전히 관리하려면 온실가스를 자연적으로 소멸시키는 능력도 아울러 키워야 한다. 그 대안은 역시 흙이다.
토양유기물인 흙은 온실가스 주성분인 탄소량을 2만4,000억 톤 함유하고 있다. 이는 대기 중의 7,500억 톤, 식물이 지닌 5,000억 톤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토양은 대기와 끊임없이 탄소를 교환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흙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연은 본래 변화의 충격을 막고 형평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에 자연을 관리하는 시책은 이를 근간으로 수립돼 왔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장기적인 방책일 경우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오는 18~21일 서울에서 전세계 대도시 관계자들이 모여 제3차 '서울 C40 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 및 기후변화 박람회'를 연다. 물과 흙,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등이 주제로 오를 예정이다. 물이 제 갈 길을 터주고, 흙에게 제 할 일을 맡기는 것이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진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노희명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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