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국내 최고의 자동차 컬렉터로 꼽힌다. 일반인들이 한 번 보기도 힘든 페라리, 포르셰, 람보르기니, 벤츠 SL65-AMG 등 고급 스포츠카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후 포르셰 뉴카레라 911 터보 등 최신형 스포츠카를 대거 구입했다는 이야기도 수입차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소문난 스피드광이다. 독일에 가면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에서 폭발적인 가속으로 질주하는 포르셰를 즐겨 탔다. 삼성에버랜드가 경기도 용인에 국내외 희귀 차종을 전시하는 삼성교통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그의 남다른 자동차사랑에서 비롯됐다.
▦그가 즐겨 타는 애마(愛馬)는 벤츠가 수제품방식으로 만드는 마이바흐. 대당 가격은 7억원 선이지만 주문자 요구에 따라 수많은 부품이 덧붙는다는 점에서 이 전 회장의 차량은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차는 부가티 르와이얄 타입41이다. 1926년 첫 선을 보인 이 차는 프랑스인 에토레 부가티가 가장 호화로운 자동차 예술품을 만든다는 목표로 제작한 것으로, 스페인 국왕 등 왕족들에게 팔렸다. 대공황으로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6대만 세상에 나왔는데, 이 전 회장이 이중 한 대를 구입, 소장하고 있다. 시가 10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총수 중에는 이건희 전 회장 외에 자동차 마니아가 많다. 무리한 자동차사업으로 몰락한 김석원 전 쌍용 회장은 차고에서 자동차를 직접 정비할 정도로 자동차공학에 일가견이 있다. 수입차 사업을 하는 계열사를 거느린 총수들도 적지 않다. 최태원 SK회장은 체어맨을 애용하지만, SK네트워크가 수입차 판매를 하는 관계로 벤츠S클래스도 번갈아 탄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효성 회장)과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각각 벤츠S클래스와 BMW7시리즈를 타는 것도 계열사의 수입차 비즈니스와 연관이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형제들은 렉서스 딜러 회사를 운영 중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최근 에버랜드에 있는 스피드웨이(경주장)에서 스포츠카를 타는 모습이 노출됐다. 스포츠카를 10대 이상 갖다 놓고 번갈아 타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 "인간은 65세 전후면 노망기다. 실무를 맡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65세에 물러났다. 그가 스피드에 심취한 것은 퇴진 후 허전함을 달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못 다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질주본능'이 살아 꿈틀대는 것은 아닌지….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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