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 '서시')
'시 외는 할머니'로 이름난 대구 서구 중리동 서두록(90) 할머니가 최근 이웃의 도움으로 애창시 20개를 추려 '시낭송 CD'를 냈다. 이 CD를 틀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이육사의 '청포도', 유치환의 '바위', 조지훈의 '사모', 윤선도의 '오우가', 윤동주의 '서시' 등 국민 애창시들이 서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할머니가 외는 시는 100여수 안팎에 달하는데 영국시인 셸리의 '비탄'과 당나라 안진경의 '쌍학명' 등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이중 가장 애송하는 시는 4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직후 외운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다.
시를 욀때면 아흔 살 할머니는 어느새 문학소녀로 변한다. 아침 저녁으로 서 할머니의 시 낭송을 듣던 이웃들은 "후손들에게 목소리를 남기 시라"며 설득, 18개 한정판으로 CD를 제작하게 됐다.
1919년 5월생인 서 할머니는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으로 16세때 겨우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이듬해인 17세때 시집가 3남1녀를 낳고 살면서 노인대학에 입학한 70세까지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서 할머니는 "영감이 젊었을 때 '일흔이 되면 시골에 별장 지어 꽃 심고 시를 외며 살자'고 했다"며 "노인대학에 들어갔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왼 것은 여든 살이 넘어서부터"라고 말했다.
뒤늦게 시(詩), 서(書), 화(畵)에 조예를 보인 서 할머니는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지금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낭랑하게 시를 외는 서 할머니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맏딸을 생각하며 직접 '철새'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