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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시간과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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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시간과 시각

입력
2009.05.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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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았다면 내 사전의 두께란 얄팍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종일 쓰는 말이라곤 몇 단어 되지 않는다. '거시기'란 단어만으로도 하루를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임이 끝날 무렵 K 선생님이 물었다. '시간'과 '시각'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이라고 싸잡아 쓰고 있는 것이 의아스럽다고 덧붙였다. '시간'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뜻한다. '시각'은 '시간의 어느 한 시점'으로 해 뜨는 시간이 아니라 해 뜨는 시각으로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시간'의 뜻 2에 얼토당토않게 '시각'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참고로 한 사전이 20여 년 전에 출간된 것을 염두에 둔다면 두 단어를 혼동하여 쓴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애써 의미 차를 밝혀둔 것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언어를 단지 기호로만 사용하려는 성향이 큰 탓인 듯하다.

의미 전달과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 '시각'은 많은 사람들이 쓴다는 이유로 '시간'이 되어버렸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를 상대한 떡장사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상가가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보였더니 떡장사는 별 머뭇거림도 없이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기호로써 두 사람은 통했다. 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달랐다. 이것이 기호의 함정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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