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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조제하는 약사들… 서울 약사회 '천사 의약품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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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조제하는 약사들… 서울 약사회 '천사 의약품지원센터'

입력
2009.05.0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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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 수유 중인데 변비가 심해요. 변비약 먹으면 안 되나요?" "관절염이 심한데 약 먹어도 될까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의 구세군 미혼모시설 두리홈 교육실. 배가 불룩 솟았거나 이미 출산해 아기를 안고 있는 10, 20대 미혼모 10여명이 이날 방문한 두 명의 약사에게 연방 질문을 쏟아냈다.

"먹는 변비 약보다 좌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아요. 세지 않게 수건으로 막으면서 넣어줘야 합니다. 이렇게." 약사 이병천(49)씨는 질문에 답하며 손을 엉덩이 쪽으로 가져가 좌약 넣는 시늉을 해보여 좌중을 웃겼다.

허인영(49ㆍ여)씨는 "관절염 약은 진통소염제라서 항생제 성분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갈 수 있으니 안 먹는 게 좋다"고 일러줬다. 이후 미혼모들은 삼삼오오 두 약사를 둘러싸고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며 조언을 구했다.

이씨와 허씨는 서울시약사회 산하 천사의약품지원센터의 부단장이다. 천사센터(단장 임준석 종로구약사회장)는 서울시약사회가 지난 1월 미혼모, 노숙자,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다문화 가정 등 소외 계층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건강 관리 및 약 이용법을 지도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가정이나 제약회사에서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약품이 너무 많아요. 약의 오남용도 문제지만 버려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 먼저 제약회사 쪽에 기부 사업을 제안했죠."(이 부단장)

서울시약사회는 보건복지가족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문도 받았다. 의약품을 소비자에 팔고 복용 지도를 하는 것이 약사의 업인지라 무료 지원이 혹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다행히 두 기관은 문제 없다고 답변했다.

제약업계도 선뜻 나서줬다. 지난해 10월 H제약사가 처음으로 4,000통 분량의 칼슘보충제를 보내왔다. 서울시약사회는 이를 한 지방자치단체 여성보호센터에 기증, 의약품 기부 봉사의 첫 걸음을 뗐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1월 중순 센터를 설립했다. 출범한 지 4개월이 채 안 됐지만 벌써 5만7,000여점, 총 2억5,000만원 어치의 의약품이 모였다. 12개 제약회사 뿐 아니라, 개인들도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의약품을 기부한 결과다.

초반에는 기증 약품이 칼슘보충제 등 주로 영양제였는데, 이제는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등 상비약은 물론이고 전립선질환 예방약, 고혈압 치료제 등으로 다양해졌다. 덩달아 봉사활동의 폭도 넓어졌다.

천사센터는 지금까지 120여곳의 무의촌 노인, 18개 다문화 가정 지원센터, 미혼모 지원센터 등에 의약품을 전달했다. 허 부단장은 "멀리 전남 완도에서도 소식을 듣고 노인들을 위한 파스나 영양제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다"면서 "각 지역 약사회를 중심으로 의약품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부터는 해외 활동에도 눈을 돌렸다. 구세군 의료친교회와 불자연합회 등이 각각 추진한 몽골 의료봉사에 근육이완제, 고혈압제, 영양제 등 15종 9,000여만원 상당의 의약품을 지원했다.

천사센터 관계자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것이 어색하다고 했다. 약사가 본래 공공성이 강한 직업이라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냐는 것이다. 허 부단장은 "약사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분들인데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일일이 찾아가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칭찬에 입이 마른다. 추남숙(50ㆍ여) 구세군 두리홈 관장은 천사센터 덕에 건강과 웃음을 되찾은 미혼모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여름 P(24)씨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두리홈에 왔을 때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몸을 푼 뒤에도 보통 사람이 3~4주면 회복하는데 반해 P씨는 석 달이 지나도 부기가 빠지지 않는 등 회복 기미가 없었다. 영양제라도 먹이면 좋으련만, 기부에 의존하는 두리홈에서 한 통에 6만~8만원 하는 영양제 구입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 음악봉사활동 겸 두리홈을 찾은 이 부단장이 영양제를 선물했고, 영양제는 P씨가 몸을 추스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추 관장은 "P씨는 건강을 되찾아 아기 아빠인 남자친구와 가정을 꾸리게 됐다. 천사센터 덕분에 이제 약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며 흐뭇해 했다.

봉사의 기쁨이 쌓일수록 천사센터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아직은 미미한 참여도와 재정이 문제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약사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약사들이 봉사할 뜻이 있어도 대부분 직접 약국을 운영해 시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약을 주로 기증받아 기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부단장은 "자원봉사자들과 지역 약사회 등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해 향후 전국적 네트워크를 만들 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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