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는 최근 BMW, 폴크스바겐 등 쟁쟁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구매 담당자에게서 은밀한 요청을 받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한국 부품업체들 명단을 우리에게도 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문의가 들어오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크라이슬러, GM 등 대형 SUV와 픽업트럭 중심의 중ㆍ대형 자동차를 생산하던 글로벌 업체들이 몰락하고 중ㆍ소형 자동차 생산에 경쟁력을 가진 현대ㆍ기아차의 약진이 두드러지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한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가격 경쟁력 외에도 고유가, 온실가스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소형차 부품 생산에 남다른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기술력으로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현대ㆍ기아차의 숨은 지원병을 자신들도 활용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지난달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린 '자동차 부품 박람회(SAE)'가 대표적인 예다. 불황으로 박람회 규모가 축소됐음에도 불구, 한국 업체들의 상담규모는 작년에 비해 3배나 급증했다. KOTRA 주력산업처 이성록 전문위원은 "부품구매비용 절감을 위해 구매처를 바꾸는 과정에서 상담 규모가 지난해 2억달러에서 올해 6억달러로 증가했다"며 "세계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 속에서 국내 부품업체들과 손잡지 않고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ㆍ기아차에 엔진과 트랜스미션 부품을 공급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품을 납품하려면 해외를 돌며 직접 설명을 해야 했지만, 최근에 쟁쟁한 완성차 업체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고 있다"고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주력 생산 차종을 대형에서 중ㆍ소형으로 전환하는 등 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GM이 5일(현지시간) 미시건주 워렌에서 열린 'GM-한국 자동차부품 구매 상담회'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친환경, 고효율 자동차 생산에 있어 가격 대비 한국 부품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KOTRA 관계자는 "GM이 위기 상황에 처한 만큼 이번 상담회는 큰 빛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며 "하지만 GM의 구매총괄그룹 부사장 등 엔지니어 200여명이 참석해 GM의 경영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상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자동차부품 시장 규모는 연간 2,200억달러에 달하지만, 한국 자동차부품의 대미 수출은 전체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40억달러 수준이다. KOTRA는 이번 상담회를 통해 4억달러 규모의 신규 수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처럼 해외의 러브콜을 받아 앞으로 이뤄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국내 부품업체들의 구매 상담회는 올해에만 7건이 더 예정돼 있다. 6월 8, 9일 체코 프라하에서 아우디와 국내 부품업체들이 상담회를 갖고, 9월에는 해외생산 부품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도요타를 대상으로 상담회를 벌인다. 이밖에 10월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펠과, 11월에는 북미 주요 부품 공급업체(1차 공급자)와 닛산 등을 대상으로 수출 상담회를 갖는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KAICA) 관계자는 "최근 들어 르노, 푸조 같은 대중적인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BMW, 아우디, 다임러 벤츠 등 고급차 제조업체들의 문의도 크게 늘었다"며 "국내 부품업체들도 이런 움직임에 맞춰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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