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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파라오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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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파라오의 능력

입력
2009.05.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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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ㆍ미술관의 기획전이 변하고 있다.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할만한 대형 전시도 잦아졌고, 외국 유수의 기관에서 명품을 빌려와 국민에게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작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인류 문명사> 기획전 시리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전시 규모가 점차 커지다 보니 홍보를 위해 언론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거나 외국 유물의 인계인수를 위해 마치 외교관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동분서주하게 되었다. 모두 예전에는 드물었던 일이다.

이러다 보니 전시 개최를 알리는 개막식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식장이 화려해지고, 테마 공연도 주요 행사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개막식에 초청하는 외빈도 대폭 늘어났다. 그 중에는 주한 외교사절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제는 동시통역도 개막식 진행의 기본요소가 되었을 정도이다.

얼마 전에 치른 이집트 문명전 <파라오와 미라> 의 개막식도 그러했다. 영어로 순차 통역을 하면서 외빈 축사, 이집트 전통무용 공연, 제막식 등의 행사를 진행하였다. '국제협력전시'를 표방한 만큼 축사는 전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한 이집트 대사와 오스트리아 대사가 맡았으며, 식장 주변의 국기 게양대에는 두 나라의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걸렸다.

문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국립박물관 기획전의 규모나 내용, 진행에서 많은 변화를 겪다 보니 직원들의 꼼꼼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여러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이집트 문명전의 개막식 행사 때에도 그러했다. '이번에야 말로 아무런 문제없이 국제협력을 컨셉(concept)으로 의미있는 개막식을 치러보자'고 직원들과 함께 다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쾌청한 봄 날씨에 어울리게 기운찬 북소리를 울렸으나 관장님을 포함한 내ㆍ외빈의 인사말씀이 끝나 갈 무렵, 어두운 구름이 개막식장을 덮기 시작했고 찬 바람도 서서히 식장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이집트 대사의 축사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바람이 한층 거세지고, 잿빛 하늘에서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미처 대비할 생각도 못하고, '조금만 더 지나면 행사가 끝날 터이니 그저 기다려보자'고 마음을 조이고 있을 뿐이었다.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의 축사 중에 기어코 번개가 치더니 북이 비바람에 얹혀 계단을 타고 굴렀다. 사실 하늘의 변화로부터 북이 구르기까지의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사전에 안전대책을 충분히 세워야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가 없어서 서둘러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전시실 내부에서의 행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사람들과 함께 식장으로 나왔을 때는 날씨가 처음처럼 쾌청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라고 놀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파라오가 세긴 세구먼!", "파라오가 바람과 비, 번개를 불러들였구먼!", "연출이야 연출!", "일부러 의도한 것이구먼!"이라고 너스레를 떨어주셨다.

실수가 인상 깊은 해프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전시내용과 직원들의 노력을 칭찬해주고 가셨다. 나도 '정말로 파라오가 주최 측의 실수조차 해프닝으로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았다.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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