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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 국민에 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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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 국민에 그 대통령

입력
2009.05.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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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예레미야'로 불렸던 토머스 칼라일의 저서 <영웅숭배론> 은 20세기 초까지 서양 사회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그러나 히틀러가 등장하고 '영웅숭배'란 단어가 '총통숭배'와 동일시되면서 평판이 급속히 떨어졌다. 사실 책제목부터 오해를 살만한 점이 있긴 했다. 독재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영웅 중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꼽힌 인물이 '예수'라는 점을 상기하면 오해는 풀린다.

위대한 지도자를 찾는 지혜

칼라일에 의하면 영웅은 근본적으로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진실하다. 그러나 자신의 진실성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진실치 못함'을 예민하게 느낀다. 영웅이 '진실한 사람'을 의미했으므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진실성을 갖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칼라일의 인간관에는 숭고한 면이 있다. 그는 아무리 천박해 보이는 인간일지라도 무언가 고귀한 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그리워하는 것은 안일과 쾌락이 아니라 고상하고 진실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기만 주어진다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빛을 발하며 영웅이 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영웅과 추종자의 관계가 지배·예속의 '물리적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자의 관계는 '도덕적 관계'다. 추종자의 '존경'이 영웅숭배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웅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알아볼 안목을 지닌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설령 탁월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영웅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라일의 '영웅숭배'는 수동적 '복종'이 아닌 자발적인 '존경'이라는 점에서 니체의 초인(超人) 개념과 사뭇 다르다. 니체가 초인과 범인(凡人)의 특징을 '의지'와 '무(無)의지'로 파악하고, 양자를 '상반된' 속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했던 것과는 달리, 칼라일은 영웅과 추종자의 차이가 다만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가 '진실한 작은 영웅'이 될 때 위대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으로 미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환호했다. 미국의 진로와 운명을 바꿀만한 신념과 용기를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라일의 시각으로 보면 오바마의 위대성보다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민의 위대성이 더욱 돋보인다. 사실 미국민은 전쟁과 대공황 등 위기를 겪을 때마다 위대한 지도자를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했고, 이번에도 탁월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건재를 과시했다.

도덕성을 자랑하던 전직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축재 과정에서 갖가지 탈법과 비리를 저지른 의혹을 받은 현직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 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언제나 '우리'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도덕적 자각' 있어야

한국 투명성기구가 2008년 9월 전국 중·고교생 1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정직하게 사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45.8%만 '정직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고, 22.6%는 '부자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감옥에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받게 된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항목에 대해 17.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쯤 되면 대통령 탓만 할 일도 아니다. 그 국민에 그 대통령 아닌가. 지도자를 탓하기에 앞서 나부터 '작은 영웅'이 되어야겠다.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자각이야말로 위대한 지도자 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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