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것은 눈을 감으면 그만이지만, 소리는 다르다. 듣기 싫어 귀를 막는 것도 잠깐이지, 내내 그러고 있을 수는 없다. 귀로 쳐들어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속수무책으로 견디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이다.
서울은 너무 시끄럽다. 소음 지옥 중 으뜸은 시청 앞 서울광장이 아닐까 싶다. 휴일이면 각종 문화 행사나 시위가 잔디밭을 점령하는데, 확성기를 어찌나 크게 트는지 광화문이나 서소문 방향의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도 귀가 웅웅 울린다. 여러 차례 시청에 항의 전화를 했다. 답변은 대개 똑같다. "미안하지만 양해해 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왜 그래야지? "좀 조용히 살 수는 없나, 시가 공공 장소를 소음 발전소로 공인하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 시민을 위한 행사를 하느라 '조금' 시끄러운 것도 이해 못하는 속 좁은 사람으로 은근히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요즘 서울광장에서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퇴근 길에 그 앞을 지나가 봤다. 잔디밭 특설 무대에서 가수와 뮤지컬 배우들이 공연을 하는데, 스피커를 꽝꽝 때리는 음악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몸을 흔들고 환성을 지르며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시민을 위한 문화 서비스라는 게 꼭 이런 식이어야 할까 싶다. 축제 기간에는 매일 밤 10시까지 이런 소란이 계속될 텐데, 공익 서비스라니 참아야 할까. 본래 왁자지껄한 게 축제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
공공 장소에서 대놓고 소음을 일으켜 괴롭히고도 그걸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청만이 아니다. 버스나 택시는 으레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다. 잔뜩 지친 몸으로 퇴근 버스를 탔다가 그 소음에 더 지쳐버리는 게 일상이 됐다. 운전기사에게 항의를 하면, 손님들 심심하지 말라고 하는 서비스인데 항의를 하다니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 정 싫으면 자가용 끌고 다니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백전백패이지만, 늘 억울한 생각이 든다.
어딜 가도 따라다니는 도시의 소음을 피해 산이나 숲으로 가도 편치 않다. 산속 절간에서 독경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는 것은 다반사이고, 라디오를 틀고 다니는 등산객도 자주 본다. 산에서는 바람 소리, 물 소리, 새 소리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배낭에 작은 컵이나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도 예의는 아니다. 숲 곳곳에 스피커를 달아 음악을 틀어 놓는 휴양림도 봤다. 다시는 안 가겠다고 결심했다.
소음은 규제 대상이다. 악기나 텔레비전, 전축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 소리로 떠들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 벌금을 내게 돼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층간 소음에 따른 분쟁 외에 이 조항이 적용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건물 밖으로 음악을 틀어 호객을 하는 상점이나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 회사와 싸우는 건 사실 피곤한 일이다.
미국 뉴욕시는 2007년 7월부터 개정된 소음규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5피트(1.5m) 떨어진 승객이 듣지 못하게 볼륨을 낮춰야 한다. 야외 공원이나 공공 장소에서는 25피트(7.6m) 떨어진 곳에서 소음이 들리면 단속 대상이다. 뉴욕이 부러운 이유가 생겼다.
오미환 문화부 차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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